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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97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효촌리 고택은 조선시대에 건축된 가옥을 1930년대 개축한 것이며, 충북지역 상류계층에서 나타나는 트인 □자형의 배치구조를 보인다.현재의 가옥의 상태는 사람이 거주하는 안채는 아직도 사용이 가능하나 앞에 자리한 건물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 않으며 관리가 많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수가 없으며 1935년인 일제강점기에 이전의 집을 개축하였다고 합니다.조선시대 전통가옥과는 달리 다락등의 공간이 많이 나타나고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에 끼친 변화상을 보여줍니다.남일면 효촌리 9-1이다. 일제시대에 목재 수급을 위해 주변의 산을 사서 개축했다고 하는 손갑수씨의 가옥은 ‘ㄱ’자로 된 안채와 ‘-’자 로 된 사랑채, 그리고 안채 좌측의 곳간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겹처마 팔작지..

예전 청주진영순교지 자리에 세워진 청주제일교회의 모습입니다. 청주진영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다섯 진영중 하나로 천주교 박해 때 마다 신자들을 체포하여 심문하고 사형 판결을 내리던 관청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 진영에서 천주교 신자인 복자 오반지 바오르가 "만 번 죽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배반할수 없소"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종 최용운 암보르시오,전 야고보,김준기 안드레아드도 1866-1868년 이 곳에서 순교하였다.1892년 한국으로 파송된 미국 북 장로회 소속 민노아선교사는 자신이 태어난 해에 일어난 병인박해의 순교역사를 기억하고자 1905년 남문밖에 있던 청주제일교회를 청주 진영 순교지로 이전하였다. 2017년 천주교 청주교구는 청주제일교회의 협조와 배려로 순교지 기념 표..

남문로1가에 자리하고 있는 청주제일교회에 있는 청주지역의 신학문 교육과 개신교의 발전에 한 획을 담당한 민노아 선교사의 흉상입니다. 청주노컷 민노아 선교사에 대하여... 왜 우리는 민노아 선교사를 '충청선교의 아버지'라 부르는가?[편집자주] 지난 1900년 충북 청주 땅을 밟은 벽안의 외국인 선교사 프레더릭 S. 밀러(한국명 민노아). 청주를 사랑해 33년 동안 이 곳에 머물며 경기 남부를 포함한 우리나라 중부권에 복음의 씨앗mcj.nocutnews.co.kr

충북 청주지역 내 가장 오래된 한글 비석으로, 청주지역 여성 교육의 초석을 놓았고 여성의 근대화 의식형성에 크게 기여한 로간부인의 활동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비석이다. 1921년 청주 제일교회 한 켠에 세워진 로간부인 기념비는 높이 101㎝, 너비 38㎝, 두께 36㎝의 직사면체 몸통과 8모각 형태의 윗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기단은 사방 60㎝, 높이 15㎝ 규모다. 미국 켄터키주 출신의 메리 리 로간(1856~1919)은 1909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와 충북지역 여성교육과 선교에 헌신했다.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 여성들이 세운 이 기념비에는 '아메리가나신부인 됴션에건너오셔 봉승상뎨명영 진충갈역하엿네 우리민족구원하려 교육구졔힘다해 십이년여일죵□ 됴션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암1리 마을 뒷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부인 청주곽씨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비석의 전면에는 독립투사일석김태희선생묘( 獨立鬪士一石金泰熙先生墓)라고 적혀 있으며 후면에는 김태희선생의 약력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한말과 일제강점기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주도한 일석(一石) 김태희(金泰熙, 1877~1936)의 묘소이다. 그는 청주시 탑동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웠고, 19세 무렵 미국인 선교사 민노아(憫老雅, F.S.Miller, 1866 ~ 1937)를 찾아가 기독교와 서구사상을 접하였다. 1904년 방흥근(方興根), 김원배(金元培) 등 동지들과 광남학교(廣南學校), 후에 청남학교(淸南學校)를 설립하여..

조선 전기 효자 양수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효자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정 출신인 양수척이 현재의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와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고 늙은 어머니에게도 효도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드러눕게 되자 고려장을 하려고 하였다. 이때 청주 남일면 효촌리에 사는 효자로 이름난 경대유(慶大有)[경연慶延]라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삼형제를 불러 꾸짖자 양수척 3형제는 크게 감화되어 이후 노모에게 효행을 극진히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모친이 중병으로 눕게 되자 청주성으로 들어가 한약을 지어 돌아오는 중에 홍수가 나서 월운천을 건너지 못하고 한탄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천의 물이 갈라져 건너게 되었으며 약을 달여 모친의 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