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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주 우암산 명암약수터 뒷쪽으로 자리한 청주곽씨들의 사당인 상당사는 오래전에 다녀왔는데 그 뒷쪽에 있다는 마애불은 제가 잘가는 문화재 카페의 글을 접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한번 찾아볼까 하는 생각에 우암산을 찾았습니다.한 때는 청주시민들의 갈증을 달래주고 명소였던 명암약수는 지금은 마실수 없는 이름만 존재하는 약수터입니다.명암약수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소로길을 따라 상당사를 찾습니다.마애불은 상당사 뒷쪽으로 길을 재촉하다 보면 바로 만날수 있습니다. 자연암반에 홀을 쥔 동자석 비슷한 조각상을 2기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그 위로는 호랑이를 나타내는 동물을 자연석을 깍아내여 조각하여 놓았습니다. 호랑이를 표현한 것이 이빨이나 발톱등을 보면 맞는것 같습니다.호랑이를 표현하기에는 조각이 조금은 조악한..
상당산성내 자리하고 있는 저수지와 그리고 옆에 있는 인공습지입니다.많은 청주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상수도용 저수지외에 논농사를 주로 하는 우리나라는 단순한 농업용 저수지로 댐을 막는 경우도 많으나 요즘에는 댐을 하나 막음으로써 여러 가지의 목적을 일거에 달성하려고 하는 다목적 댐이 많이 건설되고 있다. 즉, 발전용수, 생활용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 여러 가지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댐이 등장하여 대형화하고 있다. 오히려 좁은 국토에서 많은 토지를 수장한다고 하여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청주 상당산성내 조성된 자연마당 입간판 뒤로 오래된 고택이 한채 있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시민들은 잘 모르는 경우이지만 이 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의 거두였던 민영휘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민영휘가 나라를 팔아먹은 댓가로 받은 산성동내의 많은 토지가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체 남아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고택 뒤로 산으로 오르는 길 옆에는 지금도 민영휘와 그의 첩이었던 안유풍사이의 아들인 민천식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많은 분들은 비석의 이름만 보고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은 민천식의 묘입니다.통훈대부 홍릉참봉을 지낸 민천식이라고 적혀있는 비석과 함께 당시 한일은행 지배인을 지냈던 민천식의 추도비가 한일은행 이름으로 세워져..
신태희는 평산인으로 조선 철종 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병마우후를 지낸 무관이다. 신태희(申泰羲)의 선정을 기려 함풍9년 인 1859년(철종 10)에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현재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9번지에 있습니다. 커다란 암반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앞면에는 병마우후신공태희영세불망비( 兵馬虞侯申公泰羲永世不忘碑 )라고 적혀 있으며 비의 후면에는 비석의 건립시기가 적혀있습니다.비석의 건립시기는 함풍9년(咸豊9년)으로 각자되어 있습니다. 신태희는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838년(헌종4)에 충청병마우후가된다.又啓曰, 營將·虞候, 今當差出, 而擬望之入乏少, 已準朔守令·虞候, 竝擬, 何如? 傳曰, 允。 以李翊會·李嘉愚爲知事, 李鍾和·趙玄鈺·崔元謙爲五衛將, 訓鍊主簿李敏燮·金養德·李基豐, 以上加設, 依定式減下..
용암동 보살사 부도전입니다.예전에는 울창한 나무가 있어 접근성이 좋치를 않았지만 지금은 접근성이 아주 좋습니다.전형적인 조선조의 석종형 부도로서 크기가 제법 큽니다. 부도의 주인공의 이름은 마멸되어 확실히 알수 없습니다.한국사찰문화재에 의하면 조선후기에 조성된 부도로서 *봉당탑 (*峯堂塔)이라고 써있다.전체높이는 204센티이며 최대폭은 89센티입니다.부도의 하부에 균열이 있습니다. 취봉당탑(就峯堂塔)옹정8년 경술5월제자아(雍正8年 庚戌5月弟子芽)옹정8년이면 1730년으로 경술년이며 영조6년이다.같이 있는 자우당탑이 서기 1718년이므로 취봉당탑과는 약 12년의 간격이 있다.부도의 전체높이는 약 192센티이며 촤대폭은 85.4센티이다. 보살사 가기전 왼쪽 산허리에 조성되여 있는 민묘군밑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