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효자문
- 문의문화재단지
- 단지주혈
- 각연사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상당산성
- 선돌
- 부도
- 효자각
- 청풍문화재단지
- 한독의약박물관
- 부여박물관
- 화양동 암각자
- 공산성 선정비
- 국립청주박물관
- 오블완
- 사과과수원
- 경주김씨
- 티스토리챌린지
- 충북의 문화재
- 곡산연씨
- 밀양박씨
- 보성오씨
- 충주박물관
- 법주사
- 청주박물관
- 공주박물관
- 문경새재
- 사인암
- 화양구곡
- Today
- Total
목록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95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가덕면 계산2리인 가정동의 마을입구에 있는 마을표지석을 보니 소가 돌리던 연자맷돌과 함께 누구의 무덤에서 나온것인지는 모를 비석대석을 이용하여 마을표지석을 만들었습니다. 계산리는 본래 회인군 북면의 지역으로써 계산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문의군 동면의 인차리 일부를 병합하여 계산리라해서 가덕면에 편입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약200여년 가정절골이라 하였는데 가정절이 있었으며 중이 왕래 하였다하여 중고개 라 칭하는 고개가 있었고 고개마루엔 큰 노송이 있었다하는데 이 노송을 계수나무라 불리웠다한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없으나 이로 인하여 계산리라 이름지었다함. 현재 장터, 양지터를 1리로 가정동(가정절)을 2리로 산직마을 3리로 분구되었다. 비석대좌의 크기로 보아 제법 큰 비석이었음을..
가덕면 인차리에 위치한 가덕면사무소 도로에 접한 화단에 있는 신윤식의 비석입니다.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비석의 받침돌을 만들었습니다. 비석의 위치는 도로개설등으로 인하여 이 자리로 옮긴 듯 합니다.가덕면민 일동이 세운 비석으로 어렵던 시절(일제강점기와 6.25전쟁 후) 면민들을 위해 물질적으로 면민들을 도운 신윤식의 선행을 잊지않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신윤식씨구제기념비(申潤植氏救濟紀念碑)라고 적혀있습니다.신윤식의 비석은 현재 가덕초등학교 교내에도 1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윤식은 가덕면을 많이 사랑하고 가덕의 교육에도 앞장섰음을 알수 있습니다. 가덕초등학교의 비석이 1952년도에 건립되었으니 이 비석도 일제강점기 말엽이나 또는 6.25전쟁 전후에 세워진 비석으로..
문의문화재단지내에 위치한 박물관 앞에 있는 암각자 입니다.문의 지역내에 산재되어 있던 것을 대청댐이 생기면서 이 곳 문화재 단지로 옮긴것으로 추정됩니다.경거석( 瓊琚石 ) 구룡산 (九龍山) 구류간( 九桺杆 ) 그리고 옆에는 와은재( 窩隱齋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은행리는 면의 동부에 위치하며 2개 행정리동과 4개반 153세대 529명이며 동은 가덕면 시동리 서는 두산리 남은 인차리 북은 문주리이다. 은행리(은행정이, 으능징이, 은행정)는 본래 청주군 남일상면의 지역으로서 은행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은행정이 변하여 으능징이 또는 은행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老隱東, 老隱東里, 회인군 남면의 등곡리를 병합하여 은행리라 하여 남일면에 편입되었다. 忠州 池氏 집성촌으로 進士公 後孫 약 40세대 140명 거주하고 있다.
가덕면 한계리에 있는 신평이씨의 묘역입니다. 조선조 효종대에 영천군수를 지낸 이구(李昫)의 무덤과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이도형(李道炯)의 무덤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묘역은 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신평이씨 대동보 《무오보(戊午譜)》의 기록에 따르면 신평 이씨의 시조는 백제 사평현(沙平縣)[1]의 호족이었던 이인수(李仁壽)다. 이인수의 아들인 이주(李珠) 역시 백제의 호족이었고 이주의 증손자 이석덕(李碩德)은 통일신라의 지방관을[2] 지냈다고 한다.하지만 대개 한국의 성씨들이 그렇듯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초 사이의 계보는 여러 혼란을 거치며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고려 예종 때 문하시중 평장사 직위를 지낸 이덕명(李德明)을 중시조 1세로 삼아 대를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고려시대를..
은행리 지명을 갖게된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수세는 양호한 편입니다.지금의 지여해 충신각은 1932년에 중건하고 1960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충신문 편액을 걸었다. 현재 외손인 은진 송씨(恩津宋氏) 안소당공파(安素堂公派)에서 관리하고 있다. 남일면 은행리에 있는 지여해 충신각입니다. 지여해는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수지(受之).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湧奇)의 후손이며, 시직 지영수(池永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지운(池芸)이고, 아버지는 사과 지경담(池景湛)이며, 어머니는 선교랑(宣敎郞) 김정현(金挺賢)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