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선돌
- 사인암
- 선정비
- 영모재
- 각연사
- 부도
- 효자각
- 충북의 문화재
- 여흥민씨
- 청풍문화재단지
- 청풍문화재단지 비석
- 효자문
- 부여박물관
- 상당산성
- 국립청주박물관
- 공산성 선정비
- 경주김씨
- 청주박물관
- 공주박물관
- 법주사
- 밀양박씨
- 문의문화재단지
- 단지주혈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곡산연씨
- 사과과수원
- 충주박물관
- 현충시설
- 보성오씨
- 문경새재
- Today
- 5
- Total
- 509,231
목록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373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낭성면 갈산리에 있는 보성선씨들의 재실입니다. 숭모재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갈산리로 동네에 접어들면서 동네입구 우사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등성이 밑인 절골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숭모재(崇慕齋)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숭모재 옆으로는 샌드위치판넬조 관리동이 1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노(魯)나라 대부(大夫) 선백(宣伯)의 후손인 시조 선윤지(宣允祉)는 1382년(우왕 8) 명나라 문연각 학사(文淵閣學士)로서 사신의 명을 받들고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였다. 전라도안렴사가 되어 해안 지방에 침입하여 노략질하던 왜구들을 격퇴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유교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그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寶城)으로 은거하여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

비상리 마을초입에 있는 초계인변시석의 효행비입니다. 변시석(1603-1664)은 초계인으로 비홍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주향이며 호는 백은이다.증조 변충남은 중종대에 직산 구기로 부터 비홍에 이거하여 증 통정대부장예원 판결사가 되었고 조 변경복은 임란 때 55세로 노모를 등에 모시고 피화하여 선조 35년에 정표 정려 되었다.부 변유인은 은덕행의가 아름답고 서계 이득윤선생과 지기역리로 상통하였다.변시석은 어려서 부터 효성이 두터워 여덞형제중에서 효봉이 우뚝하였다. 또한 어버이의 뜻을 고여 스스로를 가려 지치는데 삼가며 동기부치에 은헤를 베풀고 병든이와 어려운 이를 건져주며 신의를 지키고 선근을 심었다.효로서 지평에 증직되고 때에 고을사람들이 여러 번 글을 올려 표정을 원하였으나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되 뒷날 참..

이 건물은 숙종25년(1699)에 건립하였으며 단종대왕의 제향시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집의 모양이 정자모양으로 건립된 제전 이므로 정자각 또는 배위정이라고 한다. 장릉 아랫쪽에 건립되어 있다.

회인면 부수리입구에 있는 돌탑입니다. 마을입구에 있습니다. 근간에 새로 세운 듯 합니다. 돌탑은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질병, 살(煞), 호환(虎患), 화기(火氣) 등을 막기 위해 쌓은 신앙 대상물이다. 하지만 마을 앞의 허한 방위를 막기 위해서나 특정한 모양의 지형을 보완하기 위해 쌓은 단순 비보물(裨補物)이기도 하다. 다른 신앙 대상물에 비해 풍수적인 비보(裨補)신앙의 모습을 가장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고갯마루나 사찰입구에 지나가는 길손이 마구잡이로 던져 놓은 잡석의 서낭당이나 개인이 신을 향한 구도의 마음으로 쌓은 돌탑과는 구별된다. 주민들의 소망과 정성이 모아진 비교적 정교한 마을신앙 대상물이기 때문이다. 돌탑은 돌이 지닌 영구불변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종교 원리를 이용한 신앙 대상물이다...

도담삼봉은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한가운데 세 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가운데 봉우리는 늠름한 장군처럼 위엄 있는 자태를 하고 있는데 이를 남편봉이라 부르고 그보다 좀 작은 북쪽 봉우리는 처봉, 남쪽 봉우리는 첩봉이라 부른다. 이 삼봉 가운데 처봉은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모습을 하고 있고 첩봉은 아기를 밴 모습으 로 남편봉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선생이 자신의 호를 삼봉 이라 할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즐겨 놀았다고 하는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매년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

내수읍 비상리 비상교회 뒷쪽길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정절부순천박씨의 기적비입니다. 1977년 비상리에 세웠습니다. 비문은 연규복이 짓고 글씨는 임화형이 썼다. 비석의 전면에는 정절부순천박씨기적비(貞節婦順川朴氏紀蹟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순천박씨는 이름은 종순으로 박수규의 장녀이다.9세에 초계인 변명규에게 시집을 와서 시부모를 부모처럼 극진히 모시고 남편을 부도로서 내조하였다. 시부모가 돌아가신 후 남편 또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니 부인 나이 18세였다. 실심하여 연일울며 지내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는 마음에 마음을 돌이켜 깨닫고 유복자 변종능을 낳아 낮으로는 밭을 일구고 밤으로는 길쌈을 하며 고생으로 양육하였다. 그리고 나이 40이 되기전에 손주를 보게되어 초년에 어려움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