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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암리사지 석조관음보살입상(彌巖里寺址 石造觀音菩薩立 像)은 증평 시가지에서 보강천을 건너 서북쪽으로 약 2㎞쯤 떨어진 미암1리 미륵댕이 마을의 미륵사라는 전통사찰 경내의 300여년 된 느티나무 아래 있으며, 보호각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의 기록인『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 調査資料)』에는 증평면 미암리마을에 있는데 높이 8척 5촌이 고, 어깨의 폭은 2척, 머리부의 길이는 2척 3촌의 석불로 완전 하다고 했다.이 불상은 높이 2.6m로 얼굴이 넓으며, 머리에는 화불을 양각한 보관(寶冠)을 쓰고, 이마의 눈썹 사이에 백호(白毫)가 양각되어 있고, 목 부분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다. 법의(法衣) 는 통견(通肩)으로 양팔에 걸쳐 배 아래로 흘러내려 활모양의 주름을 어깨에 걸쳐 옆으로 내려졌고, 연꽃..

증평의 지나온 시간들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습니다.선사시대에서 근래에 지금까지 증평의 시대별 여역과 함께 자료들을 담아 보았습니다.증평의 향토자료실 사진입니다.

괴산군 연풍면에 있는 연풍성지의 십자가의 길 14처의 형상물입니다.1-9처는 살아있는 삶의 여정을 나타낸 것이며 10-14처는 죽음의 여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1처 - 선고를 받으심. 2처 - 십자가를 지심. 3처 - 첫번째로 넘어지심. 4처 - 생모 마리아를 만나심. 5처 - 형제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져줌. 6처 - 동생 베로니카가 얼굴을 닦아줌. 7처 - 두번째로 넘어지심. 8처 - 부인들을 위로하심. 9처 - 세번째로 넘어지심. 10처 - 옷 벗김을 당하심. 11처 - 십자가에 못 박히심. 12처 -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 13처 - 십자가에서 내려지심. 14처 - 무덤에 묻히심.

청안면에 위치한 신경행 운수정 유허비를 찾아 보았다.먼젓번 다년온 글로 내용은 대신 해본다. 청안면 문방리 신경행운수정유허비(淸安面 文芳里 辛景行雲水亭遺墟碑) 청안면 문방리 신경행운수정유허비(淸安面 文芳里 辛景行雲水亭遺墟碑)운수정과 관련된 인물은 신경행이다. 신경행(辛景行: 1547∼1618)은 본관이 영산(靈山)이다. 자는 백도(伯道)고, 호는 조은(釣隱)이며, 시호(諡號)는 충익(忠翼)이다. 조선 선조 6년(1573) 사마시에 합king6113.tistory.com 기존의 운수정 유허비 2점이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화사는 진천읍 소강정1길 83에 있는 법주사 말사이다.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다하나 연혁은 전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폐사된 채 방치되어 오던 것을 1946년 비구니 자심慈 心 스님이 중창하였다. 본래의 절 이름도 알 수 없어 미륵이 머무는 절이라 하여 용화사라 하였다 한다. 1983년 지선智善스님이 요사를 세웠고, 1995년 법당을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법당, 여래전, 지장전, 삼성각, 요사, 석불입상, 보살입상이 있다. 본래 1959 년에 건립한 대웅전이 있었으나 퇴락하여 2003년 무위無爲주지 스님이 박가범전薄伽梵殿을 새로 건립하였다. 박가범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불로 안치되어 있다. 진천읍 신정리 용화사( 鎭川邑新井里龍華寺 ) 진천읍신정리용화사( 鎭川邑新井里龍華寺 ..

‘소강정’은 36번국도에서 ‘통미’로 가는 들판 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마을 옆에는 ‘연암골’에서 발원한 물이 흐른다. 이 물은 다시 ‘배티골’과 ‘절터골’에서 발원하여 ‘월강’ 앞으로 흐르는 물과 합쳐 ‘가무지’를 지나 석곡리로 흐른다. 마을 뒤로는 낮고 평평한 산이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있어 뜨거운 여름날에 땀을 식히기에 족하다. 국도를 사이로 하고 월강마을과 접하고 있습니다. 마을입구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에는 효를 강조하는 마을이라는 비석을 세워 소강정마을이라 적고 밑에는 비석을 세울 당시의 마을주민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소강정’은 송정리에서 가장 늦게 생긴 마을이다. 『호구총수(戶口總數)』(정조 13년, 1789)에는 이 마을과 관련된 이름이 없으나, 『구한국지방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