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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문백면 사양리에 위치한 이정의 묘지 하단에 자리하고 있는 이정의 부인인 경주김씨의 무덤과 묘표석입니다.묘표석의 규격은 이정의 것과 동일하며 비석의 전면에는 변한국대부인김씨지묘( 卞韓國大夫人金氏之墓)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1994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소 앞의 신도비는 권근(權近)이 지었다. 이정(1297∼1361)의 본관은 청주(淸州)로, 초명은 춘길(春吉)·시호는 문간(文簡)이며, 부인은 김계초(金繼貂)의 딸이다. 1325년(충숙왕 12) 문음(門蔭)으로 팔관보판관(八關寶判官)이 되었으며,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여 봉거직장(奉車直長)·경상도찰방(察訪) 등을 지내다가 10년동안 낙향하여 생활하였다. 1353년(공민왕 2)에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에 특용되고 보문대제학(寶文大提學)·우상시(右常侍) 등을 거쳐, 1357년 영록대부우산기상시(榮祿大夫右散騎常侍)로 집현전 학사에 올랐다. 공민왕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내불당(內佛堂)을 감역하였으며, 1358년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낸 이후에는 향리인 사양리로 낙향하였..

사양영당 뒷쪽 이정과 그의부인 무덤앞에 자리하고 있는 이정의 신도비입니다.신도비는 거북대좌 위에 높이 181㎝, 너비 76㎝, 두께 32.5㎝의 비신을 세우고 가첨석을 올렸다. 비문은 권근(權近)이 짓고 이정의 아들 이거이가 세웠다.

진천읍 상계리 멱수마을 입구에 있는 청주이씨문중과 관련된 비석군입니다.청주이씨 사패비를 비롯하여 청주이씨 영모비와 함께 청주인 이승종의 유허비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승종(李承宗)[1574~?]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효백(孝伯), 호는 서암처사(西巖處士). 청허당(淸虛當) 이거이(李居易)의 8세손이다.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따르면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에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한다. [활동사항] 이승종(李承宗)[1574~?]은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행과 문장이 탁월하였으며, 좌의정(左議政)을 지냈다.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효도를 하였고, 제사를 받들 때 정성을 다하였으며, 자제들을..

북이면 영하리에 있는 초계인 영득(榮得)의 아내인 안동김씨 옥련(玉㰈)의 기적비입니다.18세에 변씨가문으로 출가하여 집안을 일으키고 부모에게 효도 하였으며 남편이 득병하여 자리에 눕자 단지주혈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가문을 일으키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절과 효로 일생을 보내니 유림과 함께 면장과 향교전교등이 절효비를 건립하였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절효부안동김씨기적비( 節孝婦安東金氏紀蹟碑)라고 적혀 있으며 후면에는 안동김씨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년도는 1977년 (단기 4311년)입니다.

북이면 영하리에 자리하고 있는 초계인 변인규의 공적비입니다.변인규는 신묘년(1771)에 태어나 을미년(1835)에 졸 하였습니다.향년 65세 입니다.일찌기 조실부모하였으나 천성이 선하고 형제간에 우의로 타인의 귀감이 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송촌변공인규공적비(松村卞公仁圭功蹟碑)라고 각자 되었으며 좌우 후면에는 변인규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변인규는 초계변씨 우산공파의 손으로서 마을일과 함께 종중의 일에 관여 하면서 천안 직산면의 종중산 50여 정보가 타인에게 점거된것을 확인하고 1827-1830년 까지 3년여 동안 노력하여 대종회 소유로 돌려 놓았습니다.또한 세금미납등으로 국유화 되었던 북이면 초정리 임야 50정보를 종중의 사람들과 협의하여 불철주야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여 우산파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