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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면 은행리 지여해충신각(南一面 銀杏里 池汝海忠臣閣)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남일면 은행리 지여해충신각(南一面 銀杏里 池汝海忠臣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4. 4. 8. 11:42

은행리 지명을 갖게된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수세는 양호한 편입니다.지금의 지여해 충신각은 1932년에 중건하고 1960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충신문 편액을 걸었다. 현재 외손인 은진 송씨(恩津宋氏) 안소당공파(安素堂公派)에서 관리하고 있다. 

 

남일면 은행리에 있는 지여해 충신각입니다.

지여해는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수지(受之).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湧奇)의 후손이며, 시직 지영수(池永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지운(池芸)이고, 아버지는 사과 지경담(池景湛)이며, 어머니는 선교랑(宣敎郞) 김정현(金挺賢)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영변통판으로 300여 군사를 이끌고 운산의 적을 기습, 패주시켰다. 이 전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라 용천부사가 되었으나 모함하는 자의 참소로 의주에 충군(充軍)되었다. 배소에 있을 때 가도(椵島)에 주둔한 명나라 장수 유흥치(劉興治)의 변란에 백의종군하여 큰 공을 세우고 장연부사가 되었다가 얼마 뒤 철산부사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체찰사 김류(金鎏)의 비장(裨將)으로서 지략을 발휘하였다.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적의 포위 속에 있을 때 김류에게 출전을 간청하여 임금의 허락을 받고 어영포수(御營砲手) 200여 명을 이끌고 나아가 싸우다 전원이 전사하였다. 패보를 접한 인조는 매우 슬퍼하고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를 추증하고 전사자를 수습하여 매장하게 하였다. 청주에 지여해를 기리는 충신각이 있으며, 광주(光州)의 병천사(秉天祠), 가덕면 병암리에 있는 검암서원(儉巖書院)에 배향되었다.

 

가덕면 병암리 검암서원(加德面 屛岩里 儉巖書院) (tistory.com)

 

가덕면 병암리 검암서원(加德面 屛岩里 儉巖書院)

검암서원은 1661년(현종 2)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헌(趙憲)·한일휴(韓日休)·신지익(申之益)·송국헌(宋國憲)·연최적(延最績)·지여해(池汝海)·이동형(李東亨)·변상회(卞尙會)·신영식(申永植)·박

king6113.tistory.com

 

 

통정대부행철산도호부사증가선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충신지여해지문( 通政大夫行鐵山都護府使贈嘉善大夫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忠臣池汝海之門)이란 현판과 비석이 있으며 비석은 단기4313년(1980년)에 후손들에 의하여 제작되었으며 홍성표가 짓고 송석회가 썼다. 비석에는 지여해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