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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동 양수척효자비(雲東洞 楊水尺孝子碑) 본문
조선 전기 효자 양수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효자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정 출신인 양수척이 현재의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와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고 늙은 어머니에게도 효도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드러눕게 되자 고려장을 하려고 하였다. 이때 청주 남일면 효촌리에 사는 효자로 이름난 경대유(慶大有)[경연慶延]라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삼형제를 불러 꾸짖자 양수척 3형제는 크게 감화되어 이후 노모에게 효행을 극진히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모친이 중병으로 눕게 되자 청주성으로 들어가 한약을 지어 돌아오는 중에 홍수가 나서 월운천을 건너지 못하고 한탄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천의 물이 갈라져 건너게 되었으며 약을 달여 모친의 병구완을 하였다고 한다.양수척 효자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신을 세웠다. 비신의 규모는 34×112×23㎝이다. 비의 앞면에는 “양수척효자비(楊水尺孝子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비석의 건립 배경이나 건립 시기 등을 새겼을 것으로 추정되나, 풍화가 많이 되어 비문을 판독하기 어렵다. 청주에서 월오동으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 보전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다.천민 신분인 양수척에게 효자비를 세워준 예는 매우 드문 일로 시민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
양수척
후삼국으로부터 고려에 걸쳐 떠돌아다니면서 천업(賤業)에 종사하던 무리. 일명 수척(水尺)·화척(禾尺)·무자리라고도 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할 때 제어하기 어려웠던 유종(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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