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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5/03/29 (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바랑골[靑龍里] 바랑골은 청원군 가덕면 소재지에서 동남 방향 약 4㎞ 즈음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 마을이다. 고려 선종(宣宗) 때, 황룡사 주지 혜운(慧雲)이 금강산을 지나 용인 부근 문룡암(文 龍庵)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문살에서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운이 놀라 눈을 뜨니 경주 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에 점을 치니, 황룡사가 불에 타고 있는 징조였다. 혜운은 동이에 물을 퍼 주문을 외며 남쪽 하늘을 향해 힘껏 끼얹었 다. 그러자 붉게 물든 하늘이 점차 어둠으로 변해갔다. 혜운의 도술로 황룡사의 불길을 잡은 것이다. 이어 혜운이 충청도 땅에 이르러 하룻밤을 쉬게 되었다. 그 날 혜운의 꿈에 석가가 현몽하여, “바로 지금 그 자리가 부처님의 뜻 을 전하는데 적격한..

선녀바위[仙岩里] 북이면 선암리에서 북쪽 방향 500m 즈음에 평탄한 바위가 있다. 그 바위틈에서 물 이 흘러 옹달샘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바위를 ‘꼭기할미바위’ 혹은 ‘선녀바위’라고 한다. 옛날, 의원 한 명이 계곡의 바위 그늘에서 피곤한 몸을 잠시 의탁하고 있었다. 아침 나절 환자가 죽어간다는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갔으나 끝내 살리지 못한 터였다. 스물을 갓 넘은 젊은이였고 병도 대단하지 않았는데 구명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의 원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의원은 뻔히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도 살리지 못 한 스스로의 무능이 한스러웠다. 그는 돈만을 중시하는 항간의 의원들과는 판이했다. 빈부지천을 가리지 않고 병만 을 치료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며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꼈..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중기의 효자 이집(李輯)의 묘소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 망주석을 갖추었으며, 봉분 왼쪽에 대형 묘갈을 세웠다.이집의 본관은 고성(固城)으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대변을 맛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고 한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3년상을 치르면서 날마다 죽만 먹고 슬프게 哭하였다고 한다. 1717년(숙종43)군내 유림들의 천거로 3년 뒤인 1720년 사헌부 지평에 추증되었으며, 1725년(영조1)에 효자 정문을 세우게 하였다.이집 묘갈은 방형대좌 위에 높이 143cm, 너비 61cm, 두께 27cm의 오석비신을 세우고 가첨석을 얹었는데, 가첨석의 상단부에 여러 마리..

이경선은 1598(선조33)~1636(인조14)조선 중기 의병장입니다. 이경선(李慶善)은 경주인이며 이시발(李時發)의 아들로 1611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서 출생하였다.그는 23세 때 과거에 급제한 천재로서 호조좌랑(戶曹佐郞)을 거쳐, 남포현감(藍浦縣監-현감은 지금의 군수)으로 있었을 때다.1636년 12월 14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적병이 서울에 침입하였다. 당시 인조 대왕(仁祖大王)께서는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파천(播遷)하셨다. 이 때 이경선(李慶善)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근왕병(勤王兵-의병과 같은 군사) 2,432명을 인솔하고, 밤길을 걸으면서 수원산성까지 갔다. 그 곳에서 3일 동안 머물면서 남한산성의 소식을 듣고 있다가 다시 수원 만의산(万義山) 아래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