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선암리(仙岩里)의 유래 본문

전설따라 삼천리/전설 그리고 민담등

선암리(仙岩里)의 유래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5. 3. 29. 15:48

선녀바위[仙岩里]


북이면 선암리에서 북쪽 방향 500m 즈음에 평탄한 바위가 있다. 그 바위틈에서 물 이 흘러 옹달샘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바위를 ‘꼭기할미바위’ 혹은 ‘선녀바위’라고 한다.  
옛날, 의원 한 명이 계곡의 바위 그늘에서 피곤한 몸을 잠시 의탁하고 있었다. 아침 나절 환자가 죽어간다는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갔으나 끝내 살리지 못한 터였다. 스물을 갓 넘은 젊은이였고 병도 대단하지 않았는데 구명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의 원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의원은 뻔히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도 살리지 못 한 스스로의 무능이 한스러웠다. 
그는 돈만을 중시하는 항간의 의원들과는 판이했다. 빈부지천을 가리지 않고 병만 을 치료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며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꼈다. 그래서 무수한 인간들이 병 에 쓰러져 가는 것을 볼 때마다 자기의 손 발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괴로워했고 병의 정체를 파악하 기 위하여 더욱 연구에 정진했다.  
지금도 의원은 미 처  구명하지  못한 그 젊은 환자의 병 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숲에서 들리던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뚝 그쳤다. 갑자기 완전 밀폐된 방 안에 홀로 들어앉아 있는 듯한 적막감이 밀려 왔다. 나무는 여전히 흔들리고 물도 여전 히 흘렀다. 그러고 보니 귀가 멀어버린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은은히 풍겨오던 꽃향기 가 전혀 느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당황한 의원이 일어서려 하는데 눈앞이 캄 캄해지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삽시간에 귀도, 코도, 눈도 멀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건 무슨 병일까?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죄로 천벌을 받는구나!’ 생각하며 넋이 빠져 주저앉아 있는데 얼마쯤 시각이 흘렀을까 갑자기 숲 속의 온갖 소리가 맑디 맑게 귀를 울렸다. 이어 꽃향기가 풍겨나고 눈앞이 밝아졌다. 
의원은 꿈에서 깨어난 듯 사방을 새롭게 둘러보았다. 처음 그 자리는 틀림없는데 앉 은 곳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골짜기 안쪽의 숲이 무언가 달라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원은 자기도 모르게 그 숲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서 오시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소.”
의원이 숲에 들어서자 기품 있는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숲 속 골짜기를 끝으로 커다란 바위가 있었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부인이 그 위에 앉아 물기 젖은 머릿결을 비 단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바위 아래 금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샘물에서 방금 목욕을 끝낸 것이 분명했다.
“속인에게 목욕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잠시 술수를 쓴 것이니 용서 바라오. 대신 귀와 코와 눈에 끼인 무명의 때를 벗겨냈으니 큰 이로움이 될 것이오.”
“부인은 누구십니까? 저를 알고 계신지요?”
“나는 옥황상제 곁에서 의술과 약의 제조를 맡아보는 천녀요. 그대의 갸륵한 마음과 안타까운 심정을 내 잘 알아 약간의 도움을 주고자 아침부터 예서 기다린 거요.”
“황공하옵니다. 천녀의 은덕을 입는다면 신명을 바쳐 인간계의 병마 퇴치에 진력하 오리다.”
“천명에 따른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섭리이나 그렇지 않은 병과 죽음에는 내가 이미 그대의 몸 속에 심어 놓은 의술과 몇 가지 비방이 큰 도움을 줄 것이오.”
천녀는 병을 다스리고 죽음을 구하는 하늘의 비방 수 십 여 가지를 의원에게 전수하 였다.
“이 비방들은 단지 손끝의 기술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에 닿아 있는 것이오. 행여 그 대의 마음이 탐욕으로 흐려진다면 아무런 효과도 없을 뿐더러 큰 화를 자초하게 될 것 이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끔 내려와 목욕을 하는 이 샘물은 하늘의 영천과 맥이 통하고 있소. 환자들을 목욕시키면 큰 효험을 얻으리다.”  
선녀는 하늘에 오를 준비를 하였다.  
“정의의 길을 걷다 보면 그것을 시기하고 방해하려는 사의 기운이 끼어들게 마련이오 유의하기 바라오.”
몇 달 지나지 않아 의원은 신의(神醫)라는 평판과 함께 생불로 존경받게 되었다. 귀신같은 의술도 의술이려니와 오직 환자를 치료하고자 하는 일념 뿐 그 외의 다른 욕심은 전혀 없었다. 그의 집은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또한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해서는 거리를 묻지 않고 왕진을 다녔다. 그는 환자들을 진찰하고 약을 처 방하면서 언제나 천녀가 가르쳐준 계곡의 영천에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도록 시켰다. 그 효험은 놀라웠으므로 나중에는 성한 사람까지도 몸이 좀 나쁘다 싶으면 샘물을 찾 았다. 그래서 커다란 바위 아래의 그 영천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선암리 마을풍경입니다.


의원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반면 파리를 날리게 된 사람이 있었다. 건너 동네의 무당할멈이었다. 전에는 사람들이 병이 났다 하면 의원보다 무당인 자기를 먼저 찾았 다. 굿이다 푸닥거리다 해서 병귀를 쫓는 대가로 적지 않은 재물을 모을 수가 있었고 신령의 딸이라 해서 은근한 세도까지 부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의원이 몇 달 전부터는 못 고치는 병이 없을 만큼 의술이 비상해져서 이제 자기 문전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 무당할멈은 시기와 분노 의 불덩어리가 되었다. 밤낮으로 복수의 방도를 연구하던 중 문득 의원의 신술이 샘물 로부터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당은 몰래 숨어들어 영천의 맑은 물에 똥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갑자기 비린내가 확 풍기며 물이 솟는 것이 멈추어 버렸다. 

샘물이 더러워지고 수원(水原)이 끝장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의원은 천녀 에 대한 면목도 면목이려니와 환자 치료에 당장 영향을 받아 낙심천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천을 더럽힌 범인이 무당할멈으로 밝혀졌다. 부처님 같은 의원 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격분하였다. 그는 할멈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건너 마을로 달려갔다. 
헉헉거리며 고갯마루에 올라서는데 하늘로부터 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그대가 사람을 죽이려 하니 이게 웬 일이오?”
“하오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느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짓밟는 그런 인간을 살려두 어 무엇하겠습니까?”
“죽이고 살리는 것을 인간이 판단할 일이 아니오. 그 할멈은 옛날 천상계의 무녀였 는데 탐욕과 시기심으로 벌을 받아 추방된 여자요.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그 본성을 회개하지 못하고 영천마저 더럽혔으니 그 죄 죽어 마땅하오. 이제 할멈을 수탉으로 만 들어 새벽을 알리는 소임을 맡기기로 하겠소.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부정 한 욕심과 시기심을 경계하여 스스로를 닦게 될 것이오.”
“할멈은 영원히 그 신세를 면하지 못합니까?”
마음이 가라앉자 의원은 어느덧 할멈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천의 바위에 삼 년마다 한 번씩 내려앉게 되오. 그 때 스치는 옷자락에 바위 가 닳아 영천 쪽으로 구멍이 나면 그 속에서 할멈의 소임을 대신할 또 한 마리의 수탉 이 나올 것이오. 그렇게 되면 할멈은 천벌의 사슬에서 벗어날 것이오. 이처럼 탐욕과 시기심의 형벌은 가혹한 것이오.”  
천녀의 은은한 목소리가 무당할멈이 사는 마을 쪽으로 사라져 갔다.
“영천의 일은 걱정하지 마오. 내가 수원을 다시 열고 맑게 해 놓았소.”
다시 영천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른 새벽에 샘을 찾는 사람들은 영천 옆의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앉은 한 마리 수탉을 매번 볼 수 있었다. 돌팔매질이라도 하면 숲으로 도망갔다가 이내 바위로 돌아와 있었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기다리는 몸짓이었다.
- 청원군 북이면 전승, 󰡔청원군 전설지󰡕(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