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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55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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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디지털 문화대전에는 조선시대의 문신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나 제 생각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힘들었던 상당리 주민들을 위하여 세금대납과 식량등을 풀어 주민들을 빈곤에서 구한 상당리에 거주했던 최홍걸의 시혜비정도로 보면 좋을것 같습니다.비석은 상당리 주민들에 의하여 임신년(1932년)에 세워졌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소파거사최홍걸시혜불망비( 少坡居士崔弘杰施惠不忘碑 )라고 적혀있습니다.정억성효자비와 함께 나란히 서있습니다. 비석주변의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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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억성은 일제강점기의 효자로서 공부자탄생2479년(1928년)에 음성군 명륜회장으로 부터 포상을 받은 효자입니다.원남면 상당리 옛날 마을초입길에 있습니다. 연일정공휘억성효자비( 延日鄭公諱億成孝子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뒷면에는 정억성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억성의 아들 정만수가 일제강점기인 소화16년 (1941년)에 생전의 아버지의 포상내역(1928년)을 기록하여 동네 어귀에 세웠습니다. 효자비 전면에 있는 비석의 건립시기인 소화(昭和)16년인 신사년(辛巳年) 오월에 세웠습니다. 그 후 누군가의 의해 글자가 훼손되었으나 판독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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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충도리에 있는 순창인 조용하와 그의 부인인 평택임씨의 쌍정려입니다.조용하(趙用夏)는 본관이 순창이고 자는 윤집이며 문정공 염의 후손이다. 이 정문은 단칸 맛배지붕목조기와집이다.조용하와 처 임씨열녀의 효행 행적을 보면 조용하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보전을 하자 단지주혈로서 효력을 보았고, 그의 부인인 평택임씨는 남편인 조용하의 병이 위중하자 평택임씨 또한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병을 고치게 하였다. 이런 효행이 알려지자 효행과 효열로 상지25년(고종25년 서기1888년)지평(持平) 벼슬을 증직하고 그의 부인과 함께 효자·열녀의 쌍정문이 하사되었다.단청등이 바래있으며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것 같습니다. 孝子 贈通訓大夫 司憲府持平 趙用夏之門 효자 증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조용하지문 烈女 贈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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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있어도 보고싶다는 노래가사처럼... 언제나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소이면 탑산골 후미리 석탑은 오늘도 세월을 깁고서 오는 손님 반겨준다. 소이면 후미리 석탑(蘇伊面 厚美里 石塔) (tistory.com) 소이면 후미리 석탑(蘇伊面 厚美里 石塔) 지명도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탑상골" 조금은 외떨어진 산골짜기 , 무덤가 한켠에서 외롭게 세월을 깁고 있습니다. 밑에 자리했던 복숭아 과수원은 고목을 모두 베어내고 새로 묘목을 king6113.tistory.com 후미리 석탑 - 디지털음성문화대전 (grandculture.net) 후미리 석탑 - 디지털음성문화대전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개설]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일반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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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대장리 대장초등학교에 있는 후미리석불입니다. 후미리사지에 있던것을 1970년 후반경 반출되어 동네주민의 집에 있다가 대장초등학교에 세워졌습니다. 마을 주민(노명식, 67세)의 전언에 의하면 석불은 과수원(후미리 1614-10번지) 한가운데 서 있었으며, 발부분은 묻혀 있었고, 지상에노출된 전체 높이는 1.5m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불상이 큰 돌에 붙어있었다고 표현된 것으로 보아 바위에 양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불은 197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을 무렵 새마을 지도자들이 천렵을 왔다가 경운기에 싣고 갔다고 하며 주민들이 찾으려했으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사지발췌] 후미리사지와 대장초교석불의 관계 (tistory.com) 후미리사지와 대장초교석불의 관계 후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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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초등학교 뒷길로 하여 좁은길로 재촉하여 걷다보면 만날수 있는 석불좌상입니다. 차량통행등은 조금 불편합니다.석불좌상을 모신 보호각도 이제는 세월을 입고 많이 쇠락되었습니다. 찾는 이 많치는 않치만 문화재 돌봄사업소에서 주위도 청소하고 깨끗히 정리하여 놓았습니다. 비지정 문화재입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 보룡사지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조 불상이다. 보룡리 석조여래좌상은 머리에는 원형관을 쓰고 있는데,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나타나 있고, 귀는 길게 어깨에 닿았으며 얼굴은 풍만하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눈과 코, 입은 파손이 심하여 알아볼 수가 없다. 양손은 무릎 위에 놓았고 양발은 결가부좌하여 당당한 자세로 안정감을 준다. 법의는 통견(通肩)인데, 의문(儀文)의 굴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