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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53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사업가.오주영은 조선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의 11세손이며 오극선(吳克善)의 아들이다. 2세 때 충청북도 중원군 신니면 신청리로 이사하고 1920년 12세 때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花洞)으로 이사하였으며, 1921년에는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고내리로 이사하였다.1922년 14세 되는 해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으로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음성개량학교 4년과 서울중동학교 속성과 1년을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의 검정고시를 거쳐 17세 때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천성이 총명하고 너그럽고 후하여 젊어서 명예를 얻기보다는 고장에 정착하여 스스로 도정업 등 실업에 종사하며 근면 성실과 검소를 바탕으로 남에게 널리 베푸는 생활을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구장 남궁은의 송덕비입니다.묘표형의 비석으로 가첨석은 없다. 전체 높이는 119㎝, 앞면 폭 46㎝, 측면 폭 19㎝의 규모이다.비신 중앙에 '삼구장남궁은송덕비(三區長南宮恩頌德碑)'라 쓰여 있고, 왼쪽에 송덕 사실을 4언시로 옮겨놓았다. 사언시의 내용은 “십년 간을 부지런히 근무하였으니 좋도다 그 말씀이여!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공의를 취하였으니 모두가 그 덕을 송축한다네(十載勤務 善哉其言 捨利取義 咸頌厥德)”라고 기록한 송시로, 남궁은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조동환의 비석입니다.조동환의 자는 문옥(文玉), 호는 정암(靜岩)이며,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음성읍 평곡리에서 살았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신정왕후(神貞王后) 조대비(趙大妃)와 혈연 관계가 있어, 1905년 탁지부주사(度支部主事)에 기용되었고 삭녕세무서장으로 근무하였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조동환은 1905년 7월 度支部 稅務主事에 임명되었다.1908년 10월 朔寧稅務署長으로 영전되었다.1911년 6월 부터 8년 4개월간, 1922년 4월 부터 5개월간, 1923년 10월 부터 9년 5개월간 만 18년 남짓 陰城面長으로 재직하였다.1924년, 1927년 및 1930년에는 선거에 의해 忠淸北道評議員으로 선출되었다.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변중기의 기념비입니다. 변중기 기념비는 1930년대 읍내리 1구장을 역임한 변중기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 변중기는 읍내리 1구장 역임 이외의 행적은 미상이다. 비는 1936년에 세워졌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19㎝이며, 앞면의 폭 41㎝, 측면의 두께 15㎝이다. 비석 앞면에는 '읍일구장변중기기념비(邑一區長邊重基紀念碑)'라고 쓰여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유학자 정조헌(鄭祖憲)을 기리는 비. 음성향교 전교(典校)였던 정조헌(鄭祖憲)의 본관은 초계이며, 자는 성륜(聖倫)이고, 호는 구봉(九峯)이다. 시조 광유후(光儒候)의 31세손이고 효자 위은 정인상(鄭寅尙)의 아들로, 어머니는 효부 현풍곽씨이다. 정조헌은 평생 윤리와 도덕을 몸소 실천하고 유도(儒道) 진흥에 심신을 바쳤다. 이렇게 평생 유학 진흥에 공헌한 것을 인정받아 1984년 11월에 음성향교 앞에 정조헌의 공적을 기리는 존성비를 세웠다. 신재 이수원이 제문을 지었고, 『신재집』에 이수원이 정조헌을 위해 지은 시가 몇 수 있다. 총 높이가 230㎝인 석재 비석이다. 비의 앞면에는 '전교정공조헌존성비(典校鄭公祖憲尊聖碑)'라고 쓰여 있다. 정조헌은 충청북..
청주시의 행정가.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에서 채성용(蔡成用)과 김순임(金順任)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청주시 총무과장을 거쳐 보은, 옥천, 음성, 청원군수를 지냈다. 보은군수를 지낼 때는 말티재 도로를 넓히고 정비하였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청주시장을 재임하는 동안 1971년 무심천(無心川)에 벚꽃나무를 심고, 우암산 우회도로를 만들었다. 충청북도체육관 남쪽 도로를 확장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청주 방문 후에, 청주시의 중심에 있던 동네와 요정을 헐고 상당공원을 만들었다. 한편, 천주교측에서 시내에 조성하려던 공원묘지를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에 만들게 하였다. 그는 특히 가난한 시민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공직생활 후 대한지적공사 충북지사장으로서 부임했을 때도 부하 직원들의 존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