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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55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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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에 있는 김영일의 기념비입니다. 자세한 내력은 모르겠으나 동네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힘쓴 김영일의 은공을 잊지않기위하여 부락민 일동으로 1973년도에 비석을 세웠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한글로 "장하고 아름답다 그이름 천추에 길이길이 빛나리 김영일기념비"라고 적혀 있습니다,비석의 건립시기는 1973년 8월입니다, 추측컨데 마을의 여러가지 일에 있어 물심양면으로 힘쓴 김영일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입니다. 한글로 새긴 비석으로 희소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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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충도리 아랫볕돈에 있는 송덕비입니다. 비석은 마을 초입에 둘어가는 부분에 세워져 있습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겪으면서 당시 마을에 마을회관이 없어 힘들어 하던 시절 당신의 토지를 희사하여 마을회관을 짓도록 힘쓴 유현종의 공을 기리기위하여 세웠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현종님은 상품이 온순하시고 인보와 상조의 정신이 투철하시며 새마을 회관 건립에 있어 자신의 많은 사재를 희사하여음으로 그 후의를 오래보존키 위하여 이 비를 부락민의 이름으로 새깁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1978년 5월에 새겼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유현종송덕비동민일동(劉鉉鍾頌德碑洞民一同)라고 새겨 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유현종의 송덕내용이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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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사업가.오주영은 조선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의 11세손이며 오극선(吳克善)의 아들이다. 2세 때 충청북도 중원군 신니면 신청리로 이사하고 1920년 12세 때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花洞)으로 이사하였으며, 1921년에는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고내리로 이사하였다.1922년 14세 되는 해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으로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음성개량학교 4년과 서울중동학교 속성과 1년을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의 검정고시를 거쳐 17세 때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천성이 총명하고 너그럽고 후하여 젊어서 명예를 얻기보다는 고장에 정착하여 스스로 도정업 등 실업에 종사하며 근면 성실과 검소를 바탕으로 남에게 널리 베푸는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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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구장 남궁은의 송덕비입니다.묘표형의 비석으로 가첨석은 없다. 전체 높이는 119㎝, 앞면 폭 46㎝, 측면 폭 19㎝의 규모이다.비신 중앙에 '삼구장남궁은송덕비(三區長南宮恩頌德碑)'라 쓰여 있고, 왼쪽에 송덕 사실을 4언시로 옮겨놓았다. 사언시의 내용은 “십년 간을 부지런히 근무하였으니 좋도다 그 말씀이여!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공의를 취하였으니 모두가 그 덕을 송축한다네(十載勤務 善哉其言 捨利取義 咸頌厥德)”라고 기록한 송시로, 남궁은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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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조동환의 비석입니다.조동환의 자는 문옥(文玉), 호는 정암(靜岩)이며,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음성읍 평곡리에서 살았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신정왕후(神貞王后) 조대비(趙大妃)와 혈연 관계가 있어, 1905년 탁지부주사(度支部主事)에 기용되었고 삭녕세무서장으로 근무하였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조동환은 1905년 7월 度支部 稅務主事에 임명되었다.1908년 10월 朔寧稅務署長으로 영전되었다.1911년 6월 부터 8년 4개월간, 1922년 4월 부터 5개월간, 1923년 10월 부터 9년 5개월간 만 18년 남짓 陰城面長으로 재직하였다.1924년, 1927년 및 1930년에는 선거에 의해 忠淸北道評議員으로 선출되었다.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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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변중기의 기념비입니다. 변중기 기념비는 1930년대 읍내리 1구장을 역임한 변중기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 변중기는 읍내리 1구장 역임 이외의 행적은 미상이다. 비는 1936년에 세워졌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19㎝이며, 앞면의 폭 41㎝, 측면의 두께 15㎝이다. 비석 앞면에는 '읍일구장변중기기념비(邑一區長邊重基紀念碑)'라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