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선돌
- 단지주혈
- 부도
- 효자각
- 곡산연씨
- 청주박물관
- 국립청주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밀양박씨
- 화양구곡
- 사과과수원
- 티스토리챌린지
- 사인암
- 보성오씨
- 경주김씨
- 오블완
- 효자문
- 부여박물관
- 충주박물관
- 공산성 선정비
- 화양동 암각자
- 한독의약박물관
- 충북의 문화재
- 문경새재
- 법주사
- 각연사
- 문의문화재단지
- 공주박물관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상당산성
- Today
- Total
목록전설따라 삼천리 (11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원면 수산2리 원미마을에 있는 마을표지석입니다. 검은 자연석에 수산2구(壽山2區) 원미라고 써있습니다. 수산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일면의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판리, 송교리, 원산리와 외삼곡리, 대판리, 수곡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수곡과 원산의 이름을 따서 수산리라 하였다. 1987년 행정리동 분리로 너더리, 숫골, 스실을 수산1리로, 원미를 수산2리로 분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수산리는 남양홍씨 시조 고려태사 홍은열의 23대 익산군파 석무공이 수산에 자리잡은 이래 너더리, 숫골, 생골, 밤실에 이르기까지 남양홍씨가 많이 살았는데 현재 수산리에는 8호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남양홍씨 사당인 남양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너더리 : 숫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 동판(東板..
삼산리는 면 최북쪽에 있는 마을로 남쪽은 갈산리, 서쪽은 현암리와 청주시 산성동, 북 쪽은 내수읍에 접해 있는 산촌 마을이다. 삼산리는 청주군 산내이하면의 지역으로 상당산. 인경산. 태봉산이 둘러쌓여 三山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부를 갈산리에 넘겨주고, 화문동을 병합 하여 랑성면에 편입되었으며, 1936년 둔병이를 2리로 분구 하였다. 중간말 : 마을 중앙에 있는 마을(옛날에 洞閣이 있었음.) 새말 : 중간말 동쪽에 있는 마을. 도란말 : 중간말 서쪽에 있는 마을. 마을을 들어갈 때 산모퉁이를 돌아서 간다고 도란말이라 한다. 솟두백이 : 중간말 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 수호신의 표상인 솟대가 있었다고 한다. 탑산리 : 중간말 북쪽 솟두백이 지나서 잇는 마을(산높낮이가 탑을 쌓아..
낭성면 관정2리 묵정마을 자랑비입니다. 마을의 상징인 은행나무 아래에 석주위에 오석으로 마을자랑비를 세웠습니다.청주시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2본있으며 옆으로는 신백우선생의 사적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정2리에 있으며 마을자랑비 건립시기는 1991년입니다. 이 곳은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옛날에는 청원군 산내이하면 묵정리 택리지에는 신촌이라 칭하였으며 위치는 청주에서 보은간 국도 22키로 호수는 칠십이며 인구는 삼백이요 생업은 농업이며 전통은 충효이고 세업은 문학이다. 고금을 통한 많은 인물과 유적문충공 신숙주선생의 묵정영당과 증좌찬성 신중엄공의 신도비가 있다. 모두 충북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이 고을엔 신비한 우물이 있었지 떠보면 맑은물 고였을땐 먹물같아 이래서 먹우물이라 불..
신문리의 지명유래는 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살무니 또는 신문(新門)이라 하였습니다. 신문리는 피반령 능선을 병풍삼아 자리한 마을로,북으로 청주시 가덕면 수곡리· 내암리,동으로 쌍암리, 남으로 고석리, 서로 오동리와 접해있다.본래회인군 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촌을 병합하여 신문리라 하고 보은군 회인면에 편입되었다. 살구나무가 많아 살무니라고 하였다는말도 전해오고있다. 자연마을로는 웃말(감나무골,새말),평짓말,승주골이있으며,지명으로는 가러뱅이골,곤드래골,구댕이골,구영바우,구요골,만근쟁이,뫼서리고개,사태골,속곳이마,오좀분지골,음혈,장고개,중구방아골,홀기비등이있다. 마을입구에 들이 형성되어있다. 2012년에 새로 세운 마을유래비입니다. 마을유래비 몸돌에는 신문리를 빛낸 마을출신들의 이..
문의군 일도면의 지역으로 감나무가 많아서 감나무골(柿木洞)이라 한다. 개암나무가 많아 진전(榛田)이라고도 하였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직전에 상진리와 하진리로 분리되고 시목리가 새로 생겼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윗갬밭, 아랫갬밭, 연못골과 이도면 시목리의 일부와 삼도면 마포리 일부를 합하여 시목리로 편입됨 웃말 : 위에 있는 마을로 2호정도가 거주. 아랫말 : 아래쪽 마을로 약 8호 정도가 거주. 건너말 : 노인회관이 있는 마을 안연못골 : 연못골 안쪽 마을 새터말(새동네) : 지하차도와 접해있는데, 월송정 밑의 마을이 이주하여 새로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골 : 옥포천 철도 철교에서 강쪽 남산밑 7호정도가 살던 마을로 홍수때, 자주 물에 잠겨 1978년 취락구조개선에 따라 큰(새)동리로 이전..
구룡리는 우암 송시열의 탄생지로 용방리 동쪽에 위치한다. 동에서 북쪽으로 금강이 휘 돌아 가고 마을 뒤편에 9개의 봉우리가 있다. 마을 앞으로 멀리 명산 월이산이 보이는 명터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동쪽은 금강으로 지탄리, 남쪽은 구릉지로 원동1리, 서쪽은 칠방리와 낮은 산지, 북쪽은 금강 건너편 철봉산과 경계를 이루며 접한다. 구룡리는 600년 된 마을로 아홉 개의 봉우리가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모양이어서 구룡리九龍里라 하였다. 자연마을은 중심마을인 구룡촌, 도랫말, 제공말, 가골 등이 있고, 주작목으로 하우스 포도와 복숭아 등이 있다. 구룡리는 선산곽씨 집성촌으로 조선 개국 초기에 고려의 유신인 곽완원이 낙향하여 20 대에 걸쳐 600년을 세거했다 -구룡촌九龍村: 용방리의 본 마을로 뒷산 봉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