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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 묘정비. 본문

전설따라 삼천리/역사의 뒤안길(야사)

만동묘 묘정비.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11. 6. 08:32

아침에 동네가 난리가 났다.

무릉리에 살던 송씨가 어제부터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니 목을 맸다고 한다.

 

전날 송씨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아버님을 뵈러 간다고 하더니 돌아오질 않아

송씨의 아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아버지의 산소를 들리니 

송씨의 조상들이 모셔진 선산 한귀퉁이에 자리잡은 소나무에 송씨가 목을 매었다고 했다.

당신의 모습을 닮은 조금은 구부정한 소나무에 목을 맨 송씨의 모습이 축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무릉리 송씨의 죽음은 흐르는 바람을 타고 온 동네와 지근마을에 퍼져갔다.

송씨의 죽음을 슬퍼하는 식구들의 울음소리가 조금은 잦아들 무렵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벌을 받은거여..."

 

"돈 몇 푼에 조상을 팔았으니 당연한거지"

 

"하늘이 벌을 준거여..."

 

'먼젓번에 묘정비에 손을 댔잖아..."

 

"아! 이 사람아 대고 싶어댔나 안대면 죽을 판인데...."

 

얼마전 마을 윗쪽에 자리한 만동묘정비를 일본헌병에 감시하에 송씨를 시켜 훼손하는 일이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하기를 꺼려 하긴 했으나  무슨 연유인지 일본헌병은 송씨를 꼭 집어 일을 하라고 강요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죽은 송씨의 이야기가 오르내린 며칠 후

사람들은 동네 구장을 찾아갔다.

 

동네구장 이씨는 이 곳 무릉리 토박이는 아니지만 처세에 밝은 사람이었다.

가느다란 눈매가 무언가 성징이 좀 얍삽하다는 느낌이 드는 인상이었다. 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

거기다 동네 헌병 보조원들과도 나름 사고방식이 비슷한 한 마디로 세상을 잘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동네에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지 않고 사람들의 비위도 잘 맞추며  

항상 옅은 웃음을 얼굴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아니 아침 댓바람부터 왠 일들이래..."

 

구장은 특유의 종종걸음으로 마중을 하며 동네사람들을 맞았다.

 

"송씨의 죽음은 어떻게 된거래요?"

 

"이상한 소문이 들리던데 그게 진짜래요?"

 

"헌병대에서는 뭐래요?"

 

동네사람들의 이구동성 질문에

구장 이씨는 미리 예상이라도 했듯이 딱 잘라 말했다.

 

"자살이래요!"

 

너무 쉽게 대답하는 구장의 말에

동네사람들은 수긍을 하지 못하는 듯 조금은 실망하는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송씨 외아들이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중간급 책임자라고 했다.

헌병대에서 송씨의 아들을 유인하기 위해 송씨를 자살로 위장해서 죽였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돌고 있다는 것을 아는 구장은 마당에 모인 동네사람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런저런 좋치 않은 이야기가 도는데 너무 입에 내지마세요..."

 

"헌병대에서도 잔뜩 독기를 품고 있어요"

 

헌병대라는 말이 구장의 입에서 나오자

이 말 저 말 떠들던 동네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구장의 입에서 나오는 헌병대라는 말이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는 강가에 억새처럼 흐르던 송씨의 죽음의 원인이 되는 말이 잦아들 무렵

또 하나의 소문이 흐르는 바람속에 전해져 왔다.

 

 

"송씨가 자살한것이 맞대"

 

"만동묘에 있는 화양서원 묘정비를 언젠가 정으로 쪼았잖아"

 

"송씨가 그런것이 아니라고 했잖은가?"

 

"일본인들이 시켜서 했드래도 송씨가 하긴 했다고 하던데."

 

"묘정비를 훼손하고서 조상 볼낮이 없어서 그랬다는데...."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네구장의 얼굴에 그 특유의 웃음기가 지어졌다.

그리고는 종종걸음으로 헌병대로 향했다.

 

무릉리 송씨에 대한 소문이 한참이고 흐르다 잦아진 어느 날 저녁.

무릉리 송씨의 집에 때 아닌 불길이 오르며 온 동네사람들이 불을 끈다고 아우성을 친 후

동네에서는 죽은 송씨의 식구들을 볼수가 없었다.

 

 

불에 모두 타죽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간도에 독립군 아들이 식구들을 사람을 시켜 데려갔다는 말도 돌았다.

 

이 말 저 말

마을가를 흐르는 강물에 섞여 떠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