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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체 글 (780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도안면 광덕리 모산마을에 있는 광덕사의 석불이 머리테를 하고 있는 이유를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있다.전설에 의하면 광덕사가 생기기전 혼자 서있던 석불이 밤이면 혼자 산책을 즐겼는데 그 때는 도깨비가 하도 많아서 밤에 미륵이 혼자 산보를 나갔다가 도깨비들과 만나 서로 마빡질을 하는 바람에 머리가 깨져서 머리테를 둘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누군가가 석불의 머리테를 보고 만들어 낸 이야기 일것이다. 종교적인 관점이 아닌 민간에게 친근하게 다가갈수있는 소박하면서도 짖궂은 민담이다. 나는 광덕리 석불을 보며 머릿속에 서유기의 손오공이 떠오르던데 ...손오공 부처님 이라고 불러볼까?

도안면 화성7리 행화정마을 곡산연씨 연사종무덤으로 오르는 야산 오른쪽에 있는 곡산인 연공찬의 비석입니다.비석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연공찬공적비( 統一主體國民會議代議員延公瓚功績碑)라고 적혀 있습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한민국 제4공화국 시기에 존재했던 헌법기관. 1972년 10월 유신으로 설치되었다가 1980년 제5공화국 출범 직전 폐지되었다. 국민주권을 수임(受任)하는 기관으로 명목상 헌법 최고기구였지만, 이름과 달리 통일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았고, 국민이 주체적으로 직접 관여할 수도 없었으며, 회의도 하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의 조직이었다.이 기구의 역할은 크게 3가지였다. 우선 대통령을 선거할 것, 관선 국회의원을 인준할 것, 국회에서 의결한 헌법개정안을 의결할 것이다. 이외에도 "통일 정책 심의"..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에 위치한 공림사의 대웅전 내부 모습입니다. 공림사는 신라 48대 경문왕(景文王,861-874)때 자정선사(慈淨禪師)가 수도하던 암자에 경문왕이 선사의 인물됨을 알고 국사(國師)의 존호(尊號)와 주석(住錫)하는 절에 공림사의 이름을 지어 “空林寺”라 쓴 현판을 내렸다.조선 정종(定宗) 원년에 함허당 득통화상(涵虛堂 得通和尙)이 폐사된 절을 중창하고 주석했다. 이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대웅전만 남고 소실(燒失)되었던 것을 인조(仁祖)때 중창했으나, 1950년 6.25전에 공비(共匪)들이 절에 출몰한다는 이유로 토벌군에 의해 전소되어 폐사되었다.1965년 박삼주스님이 극락전과 요사를 재건하였고, 1981년부터 13년간 탄성스님이 중건하였다.공림사에는 부도(浮屠), 사적비(事蹟碑), 석조(石..

안동김씨 죽헌공파 재실인 경모재는 남하리 617번지에 있습니다.경모재로 가는 길은 좁지만 잘 포장되어 있어 통행에 불편은 없습니다.남하1리에 위치한 영모사와 안동김씨사라고 쓰여진 안내석이 있기는 한데 경모재를 가르키는 문구가 없다.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은 영모재를 지칭하는 말로 인지할수가 있을것 같다.안내석의 안동김씨사(安東金氏祠)가 경모재를 지칭하는 것임을 밑에 쓰여진 안내문을 읽어 보면 알수가 있다. 결론적으로 안내석에 써있는 영모사와 안동김씨사는 별개의 건물이다. 그러나 아직도 인터넷등에 안내에는 혼동할수 있는 안내문이 있다. 증평읍 남하리 영모재(曾坪邑 南下里 永慕齋) 증평읍 남하리 영모재(曾坪邑 南下里 永慕齋)안동김씨사(安東金氏祠)는 증평군 증평읍 새터말길 10-8 에 있는 안동김씨 재실(齋室..

기성전은 도안면 노암1리 행갈마을 입구에 있습니다.정면에 홍살문을 새로 만들어 세웠읍니다.삼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있는 건물이 관리사 인듯 합니다.기성전으로 오르는 계단등은 다시 조성하였는지 깨끗합니다. 기성전(箕聖殿)은 은태사(殷太師) 기자(箕子)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으로 기성사(箕聖祠) 또는 기자영당(箕子影堂)이라고도 하며, . 조선시대에는 평양과 함흥 등에서 기성전을 건립하고 기자를 제향했다. 그런데 1913년 이곳에 거주하던 한학자 한응각(韓應珏 : 1866∼1929)은 청주한씨(淸州韓氏)가 기자의 후손임을 믿고 매년 봄·가을로 평양과 함흥에 있는 기자묘(箕子廟)에 가서 참배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참배에 어려움이 많으므로 기자영정을 모사(模寫)해 이를 모시기 위해 1914년 건립한..

효자로 원근에 소문이 난 연주운(延周運)과 연면회(延冕會)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화성3리 상작마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동안 여러번의 중수를 거치면서 벽돌담과 단청 그리고 표지석등이 정비되어 참 보기가 좋습니다.야트막한 담 위로는 마을주민들이 꽃화분 등을 놓았습니다. 세대의 반영인지 스테인레스 출입문도 만들어 놓았습니다.상작마을 마을회관 얖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의 지명은 정문이 있다 하여 정문거리라고 불리웁니다. 새롭게 표지석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마 지자체에서 세워 놓은 듯 합니다. 마을마다 특색있게 마을별로 환경정비사업등을 한 결과 인 듯 싶습니다. 곡산연문쌍효각(谷山延門雙孝閣)이라 써있고 작은 글씨로 효자성균관생원진사곡산연문이십이세주운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곡산연공면회( 孝子成均館生員進士谷山延門..

증평읍 죽리에 위치한 양무공사 입구에 있는 하마비(下馬碑)입니다.이 앞을 지날때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서 예의를 갖추라는 뜻을 새긴 석비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대소인원개하마( 大小人員皆下馬)라고 씌여 있습니다. 하마비란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문구가 비석의 표면에 적혀 있다. 각 궁궐의 정문 밖, 종묘 입구에 세웠으며, 성균관을 비롯한 각 지방의 문묘 밖 홍살문에 하마비를 세웠다. 매우 드물지만 순천 송광사와 같이 사찰 일주문 밖에 하마비를 세운 경우도 있다. 왕이나 장군 · 고관 ·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놓기도 하였는데, 말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이 이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이자 예의에 합당했기 때문이다.

효열문은 화성5리 ‘북촌’에 있다. 이곳은 본래 정조 20년(1796)에 나라에서 세운 연사종의 6대손인 부호군(副護軍) 연진행(延震行)의 처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열녀각이었는데, 1910년에 경기도 양주군에 있던 효자 정후공(靖厚公) 연사종(延嗣宗)의 정려를 옮겨와 합설하였다. 그리고 1916년에는 연사종의 13대손인 연재관(延載寬)의 처 청송심씨(靑松沈氏)의 정려를 함께 복설하였다. 그러다가 순흥안씨의 정려는 1984년에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로 옮겨 세워, 현재는 효자 연사종과 효부 청송심씨의 효열만을 기리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2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편액에는 ‘효열문(孝烈門)’이라고 되어 있으며, 그 안의 앞쪽에는 ‘효자추충익대좌명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찬성곡산부원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