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부도
- 법주사
- 오블완
- 티스토리챌린지
- 청풍문화재단지
- 충북의 문화재
- 상당산성
- 문경새재
- 사인암
- 선돌
- 곡산연씨
- 공산성 선정비
- 단지주혈
- 충주박물관
- 한독의약박물관
- 공주박물관
- 경주김씨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각연사
- 사과과수원
- 효자각
- 밀양박씨
- 화양구곡
- 보성오씨
- 청주박물관
- 효자문
- 문의문화재단지
- 부여박물관
- 국립청주박물관
- 화양동 암각자
- Today
- Total
목록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10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낭성면 관정2리 묵정마을 자랑비입니다. 마을의 상징인 은행나무 아래에 석주위에 오석으로 마을자랑비를 세웠습니다.청주시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2본있으며 옆으로는 신백우선생의 사적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정2리에 있으며 마을자랑비 건립시기는 1991년입니다. 이 곳은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옛날에는 청원군 산내이하면 묵정리 택리지에는 신촌이라 칭하였으며 위치는 청주에서 보은간 국도 22키로 호수는 칠십이며 인구는 삼백이요 생업은 농업이며 전통은 충효이고 세업은 문학이다. 고금을 통한 많은 인물과 유적문충공 신숙주선생의 묵정영당과 증좌찬성 신중엄공의 신도비가 있다. 모두 충북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이 고을엔 신비한 우물이 있었지 떠보면 맑은물 고였을땐 먹물같아 이래서 먹우물이라 불..
신문리의 지명유래는 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살무니 또는 신문(新門)이라 하였습니다. 신문리는 피반령 능선을 병풍삼아 자리한 마을로,북으로 청주시 가덕면 수곡리· 내암리,동으로 쌍암리, 남으로 고석리, 서로 오동리와 접해있다.본래회인군 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촌을 병합하여 신문리라 하고 보은군 회인면에 편입되었다. 살구나무가 많아 살무니라고 하였다는말도 전해오고있다. 자연마을로는 웃말(감나무골,새말),평짓말,승주골이있으며,지명으로는 가러뱅이골,곤드래골,구댕이골,구영바우,구요골,만근쟁이,뫼서리고개,사태골,속곳이마,오좀분지골,음혈,장고개,중구방아골,홀기비등이있다. 마을입구에 들이 형성되어있다. 2012년에 새로 세운 마을유래비입니다. 마을유래비 몸돌에는 신문리를 빛낸 마을출신들의 이..
문의군 일도면의 지역으로 감나무가 많아서 감나무골(柿木洞)이라 한다. 개암나무가 많아 진전(榛田)이라고도 하였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직전에 상진리와 하진리로 분리되고 시목리가 새로 생겼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윗갬밭, 아랫갬밭, 연못골과 이도면 시목리의 일부와 삼도면 마포리 일부를 합하여 시목리로 편입됨 웃말 : 위에 있는 마을로 2호정도가 거주. 아랫말 : 아래쪽 마을로 약 8호 정도가 거주. 건너말 : 노인회관이 있는 마을 안연못골 : 연못골 안쪽 마을 새터말(새동네) : 지하차도와 접해있는데, 월송정 밑의 마을이 이주하여 새로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골 : 옥포천 철도 철교에서 강쪽 남산밑 7호정도가 살던 마을로 홍수때, 자주 물에 잠겨 1978년 취락구조개선에 따라 큰(새)동리로 이전..
구룡리는 우암 송시열의 탄생지로 용방리 동쪽에 위치한다. 동에서 북쪽으로 금강이 휘 돌아 가고 마을 뒤편에 9개의 봉우리가 있다. 마을 앞으로 멀리 명산 월이산이 보이는 명터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동쪽은 금강으로 지탄리, 남쪽은 구릉지로 원동1리, 서쪽은 칠방리와 낮은 산지, 북쪽은 금강 건너편 철봉산과 경계를 이루며 접한다. 구룡리는 600년 된 마을로 아홉 개의 봉우리가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모양이어서 구룡리九龍里라 하였다. 자연마을은 중심마을인 구룡촌, 도랫말, 제공말, 가골 등이 있고, 주작목으로 하우스 포도와 복숭아 등이 있다. 구룡리는 선산곽씨 집성촌으로 조선 개국 초기에 고려의 유신인 곽완원이 낙향하여 20 대에 걸쳐 600년을 세거했다 -구룡촌九龍村: 용방리의 본 마을로 뒷산 봉우리가..
마장리는 도장리 서쪽, 문수산 아래에 위치한다. 동쪽은 두릉, 도곡리에 인접하며 남쪽 은 대안리 북단, 서쪽은 귀평리 안남 도농리 소야, 북쪽은 오덕리 팽정과 평야지로 접한다.마장리에는 옛날 관리들의 여행자 숙소인 은천원이 있었고, 그곳에 말을 매어 놓는 곳 이 있어 말바탱이라 불려서 마장馬場이라 했다. 옛날부터 풍수해와 가뭄이 없고 들이 넓고 풍요로와 청산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혔다. ‘청산의 제일은 마장이다’라고 구전 된다. 주요 성씨는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배출한 옥천육씨이며, 마을 뒷산에 목사공 선대 묘소와 재실이 있다. 한우 사육 농가가 많으며 벼농사와 사과, 인삼 등을 재 배한다. 문화유적으로 조계종 문수암과 태고종 대성사 미륵부처 석상 등이 있다. - 마장(馬場, 말바..
서대리(書垈里)는 원래 군남면(郡南面) 송고개리(松古介里), 신대리(新垈里), 서당리(書堂里)와 신원리(新院里) 일부에 속해 있던 마을로서, 후에 이를 합쳐 서대리라 하고 옥천읍에 속하게 하여 오늘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는 군남면 송고개리에 35호, 신원리에 69호가 살았으며, 1891년 기록에는 송고개리에 10호, 신대리에 10호, 서당리에 12호, 신원리에 45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이곳의 송고개리는 현 솔고개를 가리키는 것이며, 신원리는 현 군남초등학교에서부터 원각(院覺)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곳에는 관리들의 여행 중 숙식을 제공하던 금천원(金川院)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1910년 군남면과 읍내면을 합하여 군내면이 되면서 이 때 송고개리, 신대리, 서당리와 신원리 일부를 합쳐 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