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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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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농2리는 도농리 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청성면 마장리와 대안리 귀평, 남쪽은 도덕리 도근이와 안티리, 서쪽은 청정리, 북쪽은 도농1리와 접한다. 도농2리 소야는 삼국시대부터 있던 오래된 마을이다. 또 청성으로 넘는 마을 고개의 모 양이 소가 짐을 싣는 길마와 같다 하여 고개 이름을 길마재라 하였다. 이처럼 마을이 소가 누워 있는 들판 모양의 와우臥牛형 들이라 하여 우야牛野라는 한자어가 변화되어 한자어인 소야蘇野가 되었다. 주요 성씨는 무송유씨 집성촌이 있으며 연일정씨, 김해김씨, 이천서씨 등이 어울려 산다.

청성면 합금리 상금에 있는 마을표지석입니다. 상금은 영양천씨들의 집성촌입니다. 마을표지석을 바라보며 건너편에는 마을구장을 지낸 영양인 구장 천영수의 기념비가 축대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합금리의 자연지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 윗쇠대: 쇠대 위쪽 금강 상류에 있는 마을이다. - 아랫쇠대: 쇠대 아래쪽에 강가에 있는 마을이다. - 쇠보루: 안남 수동 남쪽 강기슭에 있는 마을로 옛날 마을 뒷산을 경유해서 청성면 구 음리로 넘던 금현金峴 고개가 있었다. 안남면으로 편입되었다. - 깃대봉: 아랫쇠대(하금) 실매봉의 정상으로 옛날 측량 깃대가 있었다. - 실매봉: 아랫쇠대 동편에 위치한 산봉우리다. - 실매골: 아랫쇠대가 자리한 위편 골짜기로 마을을 감싼 모양이다. - 동주골: 아랫쇠대 남쪽 골짜기이다. - 윗쇠..

서평리는 소서리 북부 평야지에 위치하며 동쪽은 청산면 신매리 남단과 대덕리, 남쪽은 소서리 작은뱀티, 서쪽은 궁촌리, 북쪽은 청산면 신매리와 접한다. 서평리는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을 기준으로 동쪽 들은 신평(신매리), 서쪽 들은 서평이라 불러 서평리 또는 세평이로 부른다. 예부터 청산현에서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졌다. 조를 천석이나 하던 부자가 살았다고 전한다. 자연마을은 서평(세평이)으로 벼농사를 주로 하며, 서편 구릉지에 밭농사를 짓는다. 남쪽 산중턱에 장석 광산이 있다. - 서평리(세평이): 소서리 서북쪽 벌판에 위치한 마을로 신매리 남쪽에 근접하며 마을회 관이 있다. - 옹기날망들: 서평리 서북쪽에 있는 들판이며 옛날에 옹기를 굽던 곳이다. - 건절매: 서평리 서쪽에서 남북으로 난 좁고 긴 골이..

산계2리는 산계리 북부 국도 19호선이 북편을 지나는 오구니재 아래에 위치한다. 청성 파출소와 우체국, 충북농촌진흥청 옥천포도연구소 등 공공기관이 소재한다. 동쪽으로 청산면 하서리, 남쪽은 산계1리 산성, 서쪽은 저점산성을 경계로 거포리, 북쪽은 오구니재를 경계로 장연리와 접한다. 1929년에 근대기에 청서면과 청남면 일부가 청성면으로 통합되면서 산계리 신기마을이 생기고 면사무소와 청성보통학교가 들어섰다. 이때 북쪽에 청산면 소재지와 연결하는 신 작로가 신설되었다. 이때부터 신작로에서 산계리 입구 부근에 새로 생긴 마을로 이후 공공기관인 파출소, 우 체국이 들어서고, 2000년대에 옥천포도시험장, 농협창고가 자리 잡았다. 자연마을은 신 기(새터) 하나로 벼농사를 주로 하며 사과 등 과일 농사도 한다. -..

산계1리는 청성면사무소 와 청성초등학교가 위치한 청성면의 중앙부에 있다. 동쪽과 남쪽은 보청천을 경계 로 청산면 신매리·궁촌리 와 접하며, 서쪽은 산계3리 안임이, 북쪽은 저점산성을 경계로 거포리와 접한다. 마을의 유래는 산계1리를 신라 때 만든 굴산성屈山城으로 추정되는 성이 있어 산성이라 부른다. 자연마을은 산성, 계하(성저) 등이 있다. - 산성山城: 면소재지로 마을 바로 동쪽에 산계리 토성이 있다. - 성안: 산계리산성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 성저(성밑): 산계리산성 아래 마을이다. - 산계리산성: 해발 150m의 신라 산성으로 둘레가 1,500m이다. - 굴산성屈山城: 산계리토성으로 추정되며 신라 소지왕 때인 486년에 이곳에 이창과 실 죽장군이 일선지방 경북(선산군) 장정 3,000명을 동원..

화동리는 화성리의 동북부 계곡에 위치하며 마을 남단을 19번 국도가 통과한다. 지리적 으로 북부는 산지로 둘러싸인 배산임수형의 안정된 마을이다. 이 마을 동쪽 계곡과 남쪽 은 평야지로 벼와 사과 등을 재배한다. 동쪽은 장연리, 남쪽은 석성리 남동단, 서쪽은 석 성리와 대안리 귀곡, 북쪽은 도곡리와 접한다.화동리和洞里의 옛 지명은 되기, 두억, 대화동大和洞이었다. 되기의 ‘되’는 벼를 대는 되에 서 연유하여 벼 화禾가 되고, 기는 터 기基로 마을 의미로 마을 동洞 자가 되어 화동禾洞이라 하다가 화동和洞으로 변화된 것으로 생각한다. 자연마을은 화동과 소화동 등이 있다. 대한제국 시대부터 1929년까지 청서면의 소재지 였다. 주요 성씨는 이천서씨로, 장릉절신 사인공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단종 때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