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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10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판장리(板藏里)는 본래 회인군(懷仁郡) 남면(南面)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널처럼 되었으므로 늘개미, 광포(廣浦) 또는 판장(板藏)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담리(沙潭里) 일부를 병합하여 판장리라 하고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일부 수몰되었다.광포1구는 판장1리에 속한다. 조곡리 사실마을을 지나 한 구비 돌면 판장리다. 북으로 조곡리, 동으로 회인천 건너 신곡리, 남으로 분저·은운리, 서로 옥천군 안내면 노성리와 접해 있다. 본래 회인군 남면 지역으로 지형이 널처럼 되었다 하여 늘개미, 광포 또는 판장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담리 일부를 병합하여 판장리라 하고 보은군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대청댐 담수로 일부가 수몰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늘개미,..
회남면사무소에서 지방도를 따라 회인으로 향하면 거교리 다리를 건너며 우축으로 길을 들어서 처음마나는 동네가 조곡1리 새실이다. 조곡2리 마전사는 조곡1리에서 좁은 고갯길을 자동차로 10여분 더 들어가야 한다. 조곡리는 국사봉에서 부터 회인천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북으로 금곡리, 동으로 국사봉 너머 수한면 노성리, 남으로 판장리, 서로 회인천 건너 거교리와 접해있다. 본래 회인군 남면 지역이다. 노성산과 호점산성 사이가 되므로 새실 또는 조곡 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곡리라 하고 보은군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대청댐 담수로 일부가 수몰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사실(새실), 마전사가 있으며, 지명으로는 가는골, 건너들, 굽은딩이, 구수샴골, 남산골, 느름싱이, 달기봉, 도람말, 독박..
적암리(赤岩里)는 본래 보은군 왕내면 지역으로서 붉은 바위가 있어 ‘적바위’ 또는 ‘적암’ 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적암리’라 하고 마로면에 편입되었다. 적암리는 보은의 동쪽 끝으로 경상북도 상주시와 접하고 있고, 서쪽과 남쪽으로 갈평리와 임곡리를 마주보고 있으며, 북쪽으로 구병리와 사이에 구병산(해발 876.0m)를 안고 있다. 상주시 사이에는 시루봉을 두고 있어 갈평저수지와 시루봉, 구병산을 잇는 삼각형 안에 조용히 마을이 들어앉은 형국이다. 이렇게 물과 산 사이 기(氣)를 키워 가는 지형을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적암리 일대에는 큰 장수(인물)가 날 것이라는 전설과 함께 일제 강점기에 혹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바로 이러한 정기를 끊기 위해 새의..
법주리는 본래 회인현(懷仁縣) 동면(東面) 지역으로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리(柳洞)라고 부르고 구룡산(九龍山) 밑의 큰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또는 법주(法主)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에 따라 보은군(報恩郡) 회북면(懷北面) 관할이 되었으나 1946년 2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내북면(內北面) 에 편입되었다. 법주리 마을입구에 철근과 스레트로 만든 정자에 법주리 지도가 예쁘게 걸려 있습니다. 옛지명인 버드리도 이쁘게 각자되어 현판으로 걸려 있습니다. 정자옆으로는 법주리 유래비와 함께 1994년도에 세운 법주리 마을표지석이 같이 어깨동무하고 있습니다. 법주리는 본래 회인군 동면 지역으로 구룡산 아래 큰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또는 법주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법주리라 하고 회..
본래 회인군(懷仁郡) 남면(南面)의 지역으로서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해서 새터 또는 신대(新垈)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대리라 하고 회북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일부 수몰되었고, 마을을 저지대에서 새로 개설된 도로 아래로 이전하였다. 새-터(新垈)[마을] 신대리 마을. 처음에는 회인천(懷仁川) 건너에 있는 죽암 2리와 합쳐 새터라 부르고 죽암 2리는 양짓말, 신대리는 음지말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새터라는 이름보다 신대라고 많이 부르고 있다.2019년 5월24일에 세워만든 신대리(새터)마을 유래비가 마을 초입에 건립되었다
신기마을은 본래 괴산군 북하면의 지역으로서 새로 터를 잡아서 마을을 이룩하였으므로 새터말 또는 신기리(新基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용당(龍塘), 당곡(唐谷), 도락동(道樂洞)을 병합(倂合)하여 신기리(新基里)라해서 불정면(佛頂面)에 편입(編入)되었다가 1947년 1월에 괴산읍으로 편입(編入)되었다. 당골(唐谷) : 새터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당집이 있어 붙여진 이름 도락골(道樂洞) : 당(唐)골 서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피난 갔다가 돌아와서 모여 사는 동내라 해서 지칭된 이름. 아랫말 : 용당(龍塘) 아래쪽에 있는 마을 용당(龍塘) : 새터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절골 :신기의 안터 옆골로서 고려때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