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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10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감곡면 영산1리 부가촌(잿말) 마을표지석입니다. 부자가 많은동네라 부가촌일까? 아니면 부자가 되고 싶어서 부가촌일까? 과거형이든 미래형이든 부자는 좋은가 보다. 2016년에 세운 마을 표지석이다.
영산리는 감곡면 소재지에서 8㎞ 떨어진 지점에 있다. 원통산 자락에 위치하며 앞으로는 공산정천이 흐르는 농촌 마을이다. 본래 충주군 감미곡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 행정구역 개편 때에 거동(巨洞), 영촌(嶺村), 공산리(公山里) 일부를 병합하여 영촌과 공산리에서 이름을 따서 영산리라 하고 감곡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거둥터, 건너새터, 공산정이, 두덩골, 바리고개, 비아다리, 상짓말, 알고지, 양짓말, 엄장골, 우뢰편, 잔자골, 재말(영촌) 등이 있다. 거둥터는 전에 임금이 거동하였던 곳이라는 뜻이다. 공산정이는 마을 뒷 산이 공(公)자 처럼 되었으며, 정자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덩골은 지형이 두덩처럼 생겼다고 한다. 상짓말은 산지기가 사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유적..
가는다리의 마을표지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마을은 삼국시대의 백제의 상당현에 속하였고 고종22년에는 청주군 산외일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원군 북일면에 편입되어 2000년 1월1일 내수읍 승격으로 내수읍 세교1리 "가는다리"라 불리어 오고있다. 지리적 위치는 북동은 초정약수와 구녀산 남은 상당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북에서 서로 석화천이 마을중심은 옻샘에서 발원한 세교천이 흐르고 수령 300년의 버드나무가 마을의 상징이며 마을의 중심은 장터 동은 담안과 물레방아거리 남은 요곡의 4개의 자연부락이 합쳐 가는다리(세교리)이다. 지명의 유래 "가는다리"는 석화리(돌꼬지)의 낚시바위에서 장터로 놓였던 길고 가는다리에서 유래한 것이며 조선지지자료(1914년 이전)의 기록에 세교..
용안리에 역참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용원(龍院)이라 불렸다. 옛날 한양에서 내려오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서 북쪽의 노은면과도 통하는 용원삼거리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죽산·장호원 등에서 차령산맥을 넘어와 머무는 역원인 용안역(用安驛)이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외용에 용안역이 관거(官距) 45리에 있었고 충주 연원역(連原驛) 소속으로 노(奴) 103명, 비(婢) 81명, 대마(大馬) 2필, 복마(卜馬) 5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충원현조(忠原縣條)에 용안리는 당시 주민이 95호에 남자가 278명, 여자 369명 도합 647명이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안용안[內龍洞]과 외룡동(外龍洞)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행정..
본래 괴산군 남하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갈골 윗여생이과 방성골(方城골)을 병합(倂合)하여 방성리(方城里)라 하여 문광면(文光面)에 편입(編入)되었다. 이곳 웃여생이은 청천면 아랫여생이에 인접하여 다같이 여생이라고 부른다. 행정구역이 다를 뿐이다. 갈 골(盧洞) : 방성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쪽에 청천면 대전리 서쪽에는 청천면 토성마을이 인접하고 있고 구 괴산읍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방성리에서 제일 오래된 마을이다. 옛날에 갈대밭이 있었던 마을이라 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웃여생이(웃如思旺里) : 방성골마을에서 남서쪽에 잇는 마을로 전에는 청천면 여사왕리와 한 마을이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방성리에 병합(倂合)되었다. 방성골(方城골) : 일명 원방성..
진촌리는 면소재지에서 농로를 따라 분지리 소류지 방면으로 약 3km 지점에 위치하며 동은 분지리, 서남은 중리 북은 삼풍리 남은 경상도 문경시 가은읍과 접하고 있다. 조선조 숙종조 신묘(1711)에 기록한 연풍읍지에 현내면 재현5리에 인지동(진촌, 중리, 은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개금나무 숲이 있어 마을 이름을 진촌이라 하였음. 연풍군 현내면 지역이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주티동, 진촌, 매바우, 새봉 중리를 병합 주진리라 하여 괴산군 연풍면에 편입되었다가 8.15 해방 후 중리 은티리와 분리 진촌리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