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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신흥리 보살입상(公州 新興里 菩薩立像)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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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신흥리 보살입상(公州 新興里 菩薩立像)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2. 13. 10:52

 

공주 신흥리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보살입상이다.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여있다.

 

신흥리 사지는 공주시 이인면 신흥리 안넌축골 건지산 북향 계곡내에 자리하고 있는데 사역은 약 2000평 정도이다. 사역 내에서는 1구의 석불이 잔존되어 왔을 뿐 사찰과 관련된 유구는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사역내에서는 많은 와편이 출토되고 있어 사찰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곳에서 출토된 석불은 232㎝ 크기의 여래불로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이치되어 있으며 려말 -조선시대초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살이라 함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이다. 그 뜻은 일반적으로 ‘깨달음을 구해서 수도하는 중생’, ‘구도자’, ‘지혜를 가진 자’ 등으로 풀이된다.

보살의 용어와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2세기경에 성립된 ≪본생담 本生譚≫에서이다. ≪본생담≫은 석가모니가 전생에서 수행한 여러 행적을 이야기한 책이다. 이때의 보살은 후대에 나타나는 대승의 보살에 대하여 보통 ‘본생보살(本生菩薩)’이라고 부른다.

본생보살은 ≪본생담≫에서 여러 가지 형태, 즉 범천(梵天)·수신왕(樹神王)·장자(長者)·사제(司祭)·선인(仙人)·사자(獅子)·코끼리[象]·원숭이[猿]·새[鳥] 등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석가모니 1인에 귀착된다.

그러나 대승보살의 경우는 이와는 대조적이다. 즉, 다수이며 동시에 이들은 각기 별개의 인격들이다. 대승경전들과 여러 관련 불교문헌에는 관세음보살·문수보살·보현보살·지장보살·미륵보살 등 수많은 보살들이 있으나, 이들은 석가모니가 아니며, 따라서 본생보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별개의 개성을 가진 개개인격으로서 복수로 되어 있다.

이 보살 중에는 중생을 교화하여 구제하겠다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대원(大願)을 발하여 부처가 될 권리를 유보하고 윤회의 세계에 머물러 구제(救濟)에 나서고 있는 보살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적으로 최후에는 불과(佛果)를 성취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복수의 부처의 출현을 예견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와 같이 단수로서 석가모니부처만을 가리켰던 보살이 복수로서 중생을 뜻하게 됨에 따라 과거·현재·미래에 다수의 부처가 있다는 다불사상(多佛思想)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생의 석가모니보살과 같은 특정의 보살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불(成佛)하겠다는 서원을 일으켜서 보살의 길로 나아가면 그 사람이 바로 보살이며, 장차 성불할 수 있다는 ‘범부보살사상(凡夫菩薩思想)’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보살사상은 공사상(空思想)과 결합하여 대승불교의 근간을 이루었다.

대승의 보살사상 중 기본적인 두 개념은 서원(誓願)과 회향(回向)이다. 그것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이며, 자기가 쌓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남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회향이다.

그리고 보살은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물 것을 자원하여 일체의 중생을 먼저 깨달음의 세계(彼岸)에 도달하게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라고 설명되고 있다.

보살은 그 수행의 단계에 의하여 그 계위(階位)가 주어진다. 즉, 초발심(初發心:최초단계로 진리를 추구함), 행도(行道: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수행함), 불퇴전(不退轉:도달한 경지에서 물러나거나 수행을 중지하는 일이 없음), 일생보처(一生補處:한 생이 끝나면 다음에 부처가 됨)의 4단계가 있다.

후에 ≪화엄경≫에서는 이것이 십지(十地)로 정리되어졌고, 또 그 이전의 단계로서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回向), 그 이후에 등각(等覺)·묘각(妙覺)의 2위(位)가 첨가되어 도합 52위라고 불리었다.

보살의 개념은 갖가지로 확대되어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불을 탄생시켰다. 미륵불은 미래에 성불할 부처로서 현재는 도솔천(兜率天)에 미륵보살로 머물고 있다는 미래지향의 미륵신앙이 나타났다. 또한 정토사상(淨土思想)과 관련하여 아촉불(阿閦佛)과 아촉보살, 아미타불과 법장보살(法藏菩薩)의 관계가 성립하였다.

그리고 자비(慈悲)와 절복(折伏)의 신앙대상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반야경 般若經≫ 계통의 문수보살(文殊菩薩), ≪화엄경≫ 계통의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성립되고 계속하여 지장보살(地藏菩薩) 등 수많은 보살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모든 종류의 인간,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신변에 나타나 중생들의 깨달음의 성취를 위하여 교화실천에 전념한다.

이와 같은 보살 행화(行化)의 사상은 신라불교의 주요한 요소로 나타나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 보살 행화를 담고 있는 기사가 많이 전하고 있어 이를 증명하여주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행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는 권3의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南白月二聖努詰夫得怛怛朴朴)조와 대산월정사오류성중(臺山月精寺五類聖衆)조, 권5의 광덕엄장(廣德嚴莊)조와 경흥우성(憬興遇聖)조 등이 있다.

문수보살의 행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는 권4의 자장정률(慈藏定律)조와 권5의 연회도명문수점(緣會逃名文殊岾)조 등이 있다. 또한 미륵보살의 행화가 보이는 것으로는 권5의 낭지승운보현수(朗智乘雲普賢樹)조 등이 있다.

이 기사들에는 보살이 각기 중생의 교화를 위하여 갖가지의 화신(化身)으로 출현하고 있다. 조선 중기에 저술된 ≪선가구감 禪家龜鑑≫에서 휴정(休靜)은 “보살은 오로지 중생에 대한 생각뿐이다.”라고 하여 보살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보살은 또 실재하였던 고승(高僧)이나 대학자에 대한 일종의 존칭으로도 사용되었다. 인도의 용수(龍樹)·마명(馬鳴)·무착(無着)·세친(世親) 등이 보살로 불렸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원효(元曉)가 보살의 칭호를 받았다. 나아가 요즈음에는 재가(在家)·출가(出家)를 막론하고 모든 불교도들에게 확대되었다.

이 보살사상은 특히 중기 대승불교 이후 성하였던 여래장(如來藏)·불성사상(佛性思想)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발전한 대승불교의 정화(精華)라 할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지사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조 여래입상.

[개설]

원래 공주시 신흥리에 있었던 것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이다. 원래 석불이 있던 장소의 뒤쪽이 절터로 추정되고 있어서 사찰과 관련 있는 불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형태]

높이 232㎝의 거불로 신체는 거의 원통형이다. 마멸되어 옷주름과 신체의 세부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다. 얼굴은 둥근 편이며 이목구비가 선명하다. 지나치게 과장된 높이 20㎝의 육계는 머리 전체를 덮고 있다. 가슴은 볼륨감 있고 당당한 편이며 가슴 위로 삼도 중의 한 가닥만 선각되어 있다. 불상의 뒷면은 조각되지 않아 거칠며, 석불의 세부 실측치는 얼굴 55㎝, 어깨 너비 64㎝, 하단부의 너비 60㎝이다.

[특징]

큰 규모에 비해 원통형의 신체 표현과 신체 각 부분의 비례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모아 합장한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특정한 수인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의의와 평가]

규모에 비해 조각 기법이 뒷받침되지 못한 토착화된 석불상으로 존명이나 조성 시기를 단정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