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광한루 부사이의징불망비(廣寒樓 府使李義徵不忘碑) 본문

전국방방곡곡/남원(南原)

광한루 부사이의징불망비(廣寒樓 府使李義徵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12. 21. 12:51

 

 

府使 李 令公 義徵 永世不忘碑(부사 이 령공 의징 영세불망비)남원부사 이의징을 긴 세대동안 잊지 않는 비.

丁卯 四月 日(정묘 사월 일):1687년 4월에 세움.

 

이의징은 본관은 전주(). 자는 대숙(). 임영대군의 7대손이며 판서 이응시()의 아들이다.

이의징()[1643~1695]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공덕으로 음관()에 천거되어 진안 현감이 되었다. 1676년(숙종 2)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681년(숙종 7) 9월에 암행어사로 내려온 오도일()의 추천으로 양리()로 뽑혀 관직이 특승되었다. 향리들은 두려워하고 백성은 평안했다고 『진안지』에 전한다.


이어 남원 부사로 전임하여서는 가뭄이 들면 농사를 못짓는 오수방에 보를 막아 농사를 짓게 하여 그곳 사람들이 감복하여 공덕()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남원 오수방에 영세 불망비()를 세웠다.

1689년 호조 참의에 제수되었다. 이듬해에 충홍도 관찰사를 거쳐 수원 부사가 되었다. 1691년 지방 행정관으로서 세운 선정을 인정받아 호조 참판으로 승직되었다. 이듬해에 공조 판서가 되었고, 1693년 한성부 판윤을 거쳐 훈련대장이 되었다. 그해 국방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축성 후보지를 물색하기 위하여 왕의 특명을 받아 통진() 문수산()[현 경기도 김포시]을 답사, 그곳이 축성 적지임을 보고하여 성을 쌓았다.
1694년 지의금부사가 되어 옥사를 공정히 다루었으며 다시 훈련대장이 되었다.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보복적인 탄핵을 받아 절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이듬해에 사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