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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박물관 석인(原州博物館 石人) 본문
원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석인들의 모습입니다.
석인(石人)은 석수(石獸)와 함께 능묘를 수호하는 능묘 조각의 하나로, 외형에 따라 문인석과 무인석으로 나누어진다. 문인석은 일반적으로 공복(公服) 차림의 문관 형상을 하였다. 무인석은 갑옷과 무기로써 무장을 한 무관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능묘 주위에 석인을 배치하는 풍습은 중국의 전한대(前漢代 : 서기전 206∼서기 24)부터 시작된 것이다. 묘 앞에 석사(石祠)나 석궐(石闕)을 세우고 신도(神道)의 양쪽에 석인과 석수를 세워 묘를 수호하였다. 이러한 습속은 후한대의 후장(厚葬) 풍습에 따라 일반화되어 명·청대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능묘 제도가 정비된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8세기 중엽의 성덕왕릉(聖德王陵)의 문인석·무인석을 비롯하여, 괘릉(掛陵)과 흥덕왕릉(興德王陵)의 문인석·무인석 등을 들 수 있다. 힘찬 운동감, 사실적인 신체 묘사, 정교한 세부 수법 등 당시의 조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중 문인석의 모습은 당나라의 명기(明器) 중에서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괘릉의 무인석은 서역적(西域的)인 용모를 하고 있어 주목된다. 즉, 움푹 들어간 눈, 매부리코, 짙은 구레나룻 등은 이국인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최근 경주의 용강동고분(龍江洞古墳)에서 출토된 토용(土俑 : 순장할 때에 사람 대신으로 무덤에 함께 묻던, 흙으로 만든 허수아비) 중에도 비슷한 작품이 있어, 당시 신라와 서역간의 관계를 시사해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묘 앞에 석인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무인석이 사라지고 문인석만 배치되다가 14세기 중엽 충목왕릉[明陵]에 이르러 다시 문인석과 무인석이 함께 배열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공민왕릉(恭愍王陵)의 석인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문인석과 무인석은 계속 능묘 앞에 배열된다. 그러나 전대(前代)에 비하여 조각 수법이 퇴화되고 형식화되어 조각 작품이라기보다는 단지 상징적인 의물(儀物)로 남게 되었다. 능묘를 옹위하는 수호자로 당시의 조각 양식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능묘 제도의 변천을 파악하게 해 주는 것으로 한국 조각사상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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