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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면 하개리 선병국가옥 비석군(長安面 下開里 宣炳國家屋 碑石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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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면 하개리 선병국가옥 비석군(長安面 下開里 宣炳國家屋 碑石群)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6. 8. 10:20

 

 

보은동헌에 모아 놓았던 것을 다시 선병국가옥 입구로 옮겨 세웠다.전체높이  190cm,비면138×50×21cm크기의 비로 앞면에 ‘전승지선공정훈송덕비(前承旨宣公政薰頌德碑)’라고 쓰여있다.오른쪽에 차례로 ‘관선정기적비(觀善亭紀蹟碑)(전체높이230cm,비면156×56×25cm크기로 관선정학우회에서 1973년세움),  ‘남헌선정훈선생송덕비(南軒宣政薰先生頌德碑)’(전체높이370cm,비면22073  44cm, 2001년 남헌선생 송덕비건립 추진위원회)를세웠다

 

 

선정훈(宣政薰)은 (1888(고종 24). 3. 14.~1963. 3. 18. ) 근·현대의 독지가·교육 선각자로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우현(友鉉), 호는 남헌(南軒)이다. 문충공(文忠公) 선윤지(宣 允祉)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선처흠(宣處欽), 아버지는 비서승(秘書丞) 선영홍 (宣永鴻)이다. 전라도 고흥 금산에서 태어났다. 유학자이자 의병장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에게서 수학하였다. 그는 풍채가 준수하고 성품이 활달하며 위의(威義)가 있었다. 1903년 부친을 따라 전남 보성에서 장안면 개안리에 이주하여 이후 1907년 99칸의 대저택을 신축 하기 시작했다. 1927년에는 저택 동편에 ‘관선정(觀善亭)’이라는 서당을 세우고, 한편으로는 보은향교 명륜당에 서숙(書塾)을 설치하여 저명한 학자를 초빙하여 후학을 가르쳤다. 또한 교육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사재로 전담하고, 당시 일제의 식민지 학교 교육을 거부하고 전통 유학을 교육해 은연중에 민족정신을 북돋우고 우리의 전통문화 계승에 이바지했다. 또한, 해마다 춘궁기가 되면 만주의 좁쌀을 사들여 빈민을 구제하는 등 크게 자선을 베풀어 1937년 지역주민들이 장안면 황곡리에 송덕비를 세웠다. 이후 송덕비 는 1988년 보은읍 삼산리 보은동헌 경내로 옮겨 세웠다가 다시 개안리 저택 앞으로 이건하였다. 또한 2001년 ‘남헌선정훈선생송덕비’가 세워졌다. 그가 지은 99칸 대저택은 현재 ‘선병국가옥’이란 이름으로 중요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체높이 253cm, 비면 120×31×3cm크기의 철비이다.남헌 선정훈선생의 아버지이신 전비서경영홍공(前秘書卿永鴻公)이 소작인에게 논밭을 나누어 주어 은혜를 베풀고 이 농지에 대한 세금도 몸소부담하여 주었다.1922년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 점암, 남양, 남면등 4개면 소작농민이 세웠다.이 비는 도로확장사업으로 인하여 장안면 개안리 선처흠 효열각 옆으로 2004년 이건하였다, 전비서경선공영홍시혜비( 前祕書卿宣公永鴻施惠碑 )라고 써 있습니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선정비들을 강물에 집어던져야 합니다” - 조선일보 (chosun.com)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선정비들을 강물에 집어던져야 합니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선정비들을 강물에 집어던져야 합니다 231 남한산성 비석 숲에 숨은 복잡다기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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