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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면 상발리사지(南二面 上鉢里寺址) 본문
남이면 상발리에 ‘상발리사지(上錄里寺地)’가 있다. 속칭 ‘양절마을〔陽寺洞에 있는 절터로 절 이름이 ‘양사(陽寺)’였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인할 수 없다. 절터는 현재 대부분 밭이 되었으며 서편에는 한양 조씨의 재실(齋室)이 있다. 특별한 유구는 없으나 주변에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와 편이 발견되고,머리부분이 없는 석불좌상 6구가 따로 보호각 안에 보존되고 있었는데,최근에 3구가 없어지고 3구만 남아 있다. 이 석불들은 모두 머리가 없어졌는데 이 중 하나는 1976년까지 머리가 있었으나 도난당하였다고 한다. 6구의 불상은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결가부좌한 좌상이었는데,최근 다시 3구가 없어졌다. 중앙에 봉안된 석불은 가장 큰 것으로서 1988년에 새로 발견된 것으로 다른 작은 불상들과 함께 보관하고 있다. 새로 발견된 불상은 그 규모로 보아 본존불로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약함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불임을 알 수 있다. 조성 시기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눈이 소복히 내린다.큰길로는 내린눈이 많이 녹았지만 아직도 지방도의 이면도로는 녹지않아 차가 거북이 걸음이다.남이면 상발리에 위치한 상발리 사지를 다시 찾았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와편이 간간히 발견된다고는 하는데 현재는 그 어디에서도 절의 모습과 흔적은 찾을수가 없다.마침 찾은날 근처 민가에 계시는 주인분과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확실한것은 당신도 알수가 없다고 하시며 동네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라 하며 전해준다.현재 불상이 있는곳에 양사(陽寺)라 일컬어지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임진왜란때 왜구들이 절앞에 고개를 너머 오는데 왜구의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고 앞으로 가질 못했다.그 이유를 알아본즉 근처에 절에 있는 석불의 힘이라 생각하고 절에 있던 석불의 목을 모두 파손시켰다고 한다. 그때 파손된 석불의 목에서 피가 흘러 왜구들이 영험한 석불이라하여 이 마을을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흘러듣기 쉬운 옛이야기라 흘리기 쉽지만 어떻든 큰사찰이 있었음을 뒷받침 해주는것 같다
예전에는 초막이였지만 현재의 근처 민가의 주인이 자비로 시맨브럭집을 만들었다고 한다.큰석불1구와 작은석불 5구가 있었지만 작은석불3구는 도난당하고 현재는 3구만 자리하고 있다. 현재 자리하고 있는 석불의 보존상태는 열악하다.불두는 3구 모두 파손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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