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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의약박물관 의방유취(韓獨醫藥博物館 醫方類聚) 본문
세종의 명으로 1437~39년에 북경에 사신과 역관(譯官)이 파견되어 〈내경 內徑〉에서부터 당·송·원과 명초까지의 의서들을 폭넓게 수집(蒐集)하여 1442~45년에 집현전의 김예몽(金禮蒙)·유성원(柳誠源)·민보화(閔普和)·김문(金汶)·신석조(辛碩祖)·이예(李芮)·김수온(金守溫) 등과 의사인 전순의(全循義)·김유지(金有知) 등에 의해 365권으로 편찬·완성되었다. 그후 세조의 명으로 성종대에 이르기까지(1465~77) 양성지(梁誠之)의 주관 아래 유신(儒臣)과 의관(醫官)이 함께 교정해 도합 266권으로 간행되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의방유취〉는 국내본이 아닌 일본판인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加藤]가 다른 문화재와 함께 약탈하여 일본으로 가져갔으며, 다른 보관본은 불에 타 없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에 일본인 의사 기타무라[喜多村直寬]가 〈의방유취〉 복간본(覆刊本) 266권 2질을 선물용으로 보내오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구입할 수 없었다.
국내의 원간본(原刊本)은 강화본 〈세종실록 世宗實錄〉과 유사한 자체인 을해활자(乙亥活字)로 한백지(韓白紙)에 씌어 있었는데, 이 원본은 지금 일본의 궁내성(宮內省) 도서관에 12권이 사라지고 254권만이 보관되어 있으며, 복간본 2질 중 1질이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는 1965년에 동양의과대학에서 일본의 목활자본을 영인한 〈의방유취〉와 북한의 의학과학원 동의학연구소에서 번역한 것을 국내의 출판사에서 영인한 〈의방유취〉가 있다.
이 책의 체제는 진찰법·처방법 등 의학의 일반이론을 다룬 총론의 3권과 모든 질병을 95문으로 나눈 나머지 263권의 2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제내경소문 皇帝內徑素門〉으로부터 〈소학의경 小學醫經〉에 이르기까지 153종류의 책들을 시대순으로 인용하여 분야별로 관련 학설과 이론을 모아 싣고 출전을 밝혔으며, 처방은 뒤에 따로 취합(聚合)하여 놓았는데 여기서 의방유취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의학 연구자들에게는 학술적 가치와 아울러 실용적 측면에서도 필수적인 의서로 인정받고 있다.[다음]
『의방유취』는 한방 의학의 지식 내지 서적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다.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이 집현전부교리(集賢展副校理) 김례몽(金禮蒙)과 저작랑(著作郞) 유성원(柳誠源) 등에게 명하여 의방(醫方)을 수집·편찬하게 하고 뒤에 다시 신석조(辛碩祖)·김수온(金守溫) 등에게 명하여 의관(醫官) 진순의(陳循義) 등을 모아 편찬케 하였다. 이후 안평대군 용(瑢), 도승지 이사철(李思哲) 등에게 감수케 하여 3년만인 1445년(세종 27) 10월 완성하였다. 총 365권으로, 그 내용은 91문으로 나누어 각문(各門)에서는 먼저 그 문(門)에 해당하는 병론(病論)을 들고 다음에 의방(醫方)들을 출전(出典)의 연대순에 따라 열기(列記)하였다. 글의 인용에서도 책들의 연대 선후(先後)와 문자의 중출(重出) 및 이동(異同)에 따라 그 아래에 일일이 주(註)를 기록하여 각 책들의 원문을 그대로 질서정연하게 종류별로 모아 편입(編入)하였다.
세조 때에는 워낙 거질(巨帙)이어서 곧바로 간행되지는 못하고 잠시 간요(簡要)한 방서(方書)로서 부문별로 나누어 강습케 했으며, 수차 교정·정리를 거쳐 266권 264책으로 편성되어 1447년(성종 8)에 한계희(韓繼禧)·임원준(任元濬) 등이 30부를 인출하였다. 인출된 책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없어지고 12책이 없는 252책의 1질이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약탈되었다. 이후 일본 궁내청(宮內廳) 도서료(圖書寮)에 보관되어 있던 현존 유일의 초인본(初印本)을 일본 의관(醫官) 기타무라 나오히로[喜多村直寬]가 1852년(철종 3) 강호(江戶)서 축각(縮刻)하여 재간하였다.
한독박물관 소장본 『의방유취』는 제 201권1책의 영본(零本)으로 을해자본이다. 수록된 내용은 「양성문(養性門)」이며, 「보단요결(寶丹要訣)」, 「주씨집험방(朱氏集驗方)」, 「왕씨집험방(王氏集驗方)」, 「수친양로서(壽親養老書)」, 「사림광기(事林廣記)」, 「산거사요(山居四要)」 등 여섯 의방을 전재(轉載)하였다.
「보단요결」에는 난경술(鸞鏡術)·작수정침술(作水精枕術) 등 37항, 「주씨집험방」에는 진상자양생(眞常子養生)·손진인양생명(孫眞人養生銘) 등 29항, 「왕씨집험방」에는 의설(醫說) 1항, 「수친양로서」에는 태상옥축육자기(太上玉軸六字氣)·보양(保養) 등 2항, 「사림광기」에는 수진요결(修眞要訣)·방환보익(防患補益) 등 13항, 「산거사요」에는 섭생지요(攝生之要)의 기거격언(起居格言)·기거지의(起居之宜), 양생지요(養生之要)의 음식지의(飮食之宜)·양생지법(養生之法)·치심(治心) 등 5항이 수록되었다.
책의 형태는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 21.6×14.8㎝의 크기로 계선이 있으며 본문은 9행 17자이다. 주쌍행(註雙行)이며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다. 전체 크기는 30×18.8㎝이며 판심제는 ‘유취(類聚)’이다. 69장(張) 이하 가운데 부분이 파손되어 보수하였다.
이 자료는 비록 1권이기는 하나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유일본의 초판본이란 점에서 의약서 인쇄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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