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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면 복천암(俗離山面 福川庵) 본문

복천암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창건되어 고려시대 태조 1년(918) 證通국사, 선종 1년(1084) 導生僧痛, 예종 2년(1107) 慈淨國尊에 의해 각각 중수가 이루어졌다. 조선시대는 세종 31년(1449) 信眉선사가 중수했고, 영조 11년(1735)에 소실된 암자를 卓融선사가 재창하였으며, 순조 3년(1803) 就俊師가 중수했다고 전한다.

















복천암 극락전의 주불로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이다. 이 불상은 법당이 1733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1735년부터 1737년까지의 중창불사 때에 법당과 함께 조성된 상이다. 1737년(건륭 2년)에 이루어진 복장 발원문은 다시 불상에 봉안되었는지 조사 때에는 볼 수 없었고, 『寺誌』(충청북도, 1982. P.254)에 수록되어 있어 참고할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불상을 만든 조각장은 演機, 斗策, 守性, 超鵬, 守堅, 廣鵬 등임을 알 수 있다.
아미타불좌상을 본존상으로 하여 관음보살좌상을 좌협시보살로 그리고 대세지보살좌상을 우협시보살로 하는 아미타삼존불상이다. 삼존상은 각각 중대석이 사각인 3단 연화대좌에 봉안되어 있다.본존상은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결하고 있으며, 얼굴에 살집이 있고 특히 코가 작고 양 볼과 턱이 풍만하여 온후한 인상이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둥글게 감싼 변형 편단우견으로 속에 입은 편삼의 옷깃을 대의와 대칭을 이루게 입고 있다. 가슴에는 수평으로 입은 내의의 윗단이 보이는데 윗부분이 주름져 있다. 상체가 길쭉한 편이나 어깨는 작고 움추린 자세이다. 불신의 양감은 적당하며 옷 주름은 이에 걸맞게 적당히 투박하며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좌우 보살상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손만 좌우대칭을 이룬다. 높은 보관을 썼는데 각각의 보관에 화불과 정병이 표현되어 있어서 관음과 대세지보살상임을 구별할 수 있다. 보관 속으로 높게 묶은 보발이 있고 보발은 다시 귀를 감아 돌아 어깨 위로 몇 가닥 늘어지고 있다. 보살상의 얼굴은 본존상과 달리 아래턱의 살집이 적어서 갸름하고 단정한 인상이다. 불신도 작으며 법의는 여래상과 같은 형식으로 입고 있다. 관음이 들고 있는 연꽃가지 위에는 특이하게 정병이 붙어 있다.
삼존상의 대좌는 크기에서만 조금 차이를 보일뿐 거의 같은 형태로, 상단과 하단의 연판은 양감이 있으며 중대석 앞면에는 옆으로 긴 안상 안에 당초문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아미타불좌상을 본존상으로 하여 관음보살좌상을 좌협시보살로 그리고 대세지보살좌상을 우협시보살로 하는 아미타삼존불상이다.극락보전 내 봉안중인 아미타불은 복천암 사적기에 의하면 건륭 2년(1737)에 두책(斗策), 초붕(超鵬), 수견(守堅), 광붕(廣鵬) 등의 스님이 제작한 것으로 통견의 가사와 옷 주름 선이 간략화 되고 형식화 된 수법 등 18세기 불상의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어 조성 기록이 잘 남아 있다.

복천암 극락보전 후불도는 1909년(隆熙 3)에 제작된 것으로, 389㎝(세로)×286㎝(가로)의 규모의 석가모니불․약사불․아미타불을 한 화면에 모신, 통칭 삼세불도이다.
화면구성은 세 여래를 중심으로, 하단에는 각 여래마다 2位의 脇侍보살과 2大天王이 있고, 상단에는 역시 2大天王과 8位의 弟子像으로 이루어져 있다.이 불화의 색채는 赤色과 綠色 위주이며, 일부 藍色이 설채되어 있다. 이외 몇 가지 색채가 사용되었으나, 18세기에 비해 비교적 단조로운 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녹색의 경우는 이 시기 대부분의 불화에서 볼 수 있듯 안료의 결함으로 인해 색이 균일하지 않다. 현재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나 화면 상단 아미타여래의 두․신광배에 얼룩이 있으며, 이외 몇 곳에 유사한 자국이 있다.이 불화의 특징은 화면구성상 도상의 배치에서 찾을 수 있다. 중앙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약사불․아미타불이 석가모니불의 뒤로 물러나 묘사되어 있으며, 크기도 석가모니불에 비해 작다. 이것은 평면상에 회화적 입체감을 형성한 것으로 近代佛畵에 서양화법이 도입되면서 화면구성에도 적용된 것이다.또한 협시보살의 배치가 통례에서 벗어난 점도 특징적이다. 즉, 응당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로 그려져야 할 문수․보현보살 대신, 관음․세지보살이 그려진 점이다. 이 양 협시는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통칭되나 여기에서는 석가모니불의 협시로 등장하여, 經典에 근거한 圖像的 안배보다는 殿閣의 명칭(極樂寶殿)이나 대중적 신앙 양태를 염두에 둔 도상배치의 변용으로 여겨진다.복천암 삼세불도는 극락보전 내 아미타불 뒤에 위치하며 화기문에 의하면 융희 3년(1909) 5월 8일에 금어(金魚), 금호(錦湖), 약효(若效) 등의 화사집단이 제작한 것으로 중앙의 석가, 아미타, 약사의 삼세불을 중심으로 하단에는 팔대보살, 상단에는 제자와 권속으로 화면의 4방에는 사천왕을 배치하였으며 전체적으로 적색과 청색이 주색이고 황토색, 녹색, 흰색이 보조색으로 사용되었다.
화사인 약효는 19세기 후반 충청도지역의 삼세불도를 다수 제작하였는데 본 탱화는 대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시대적 특징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 제작시기가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조각수법이 뛰어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사적기에 따르면, 복천암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창건되어 고려시대 태조 1년(918) 證通국사, 선종 1년(1084) 導生僧痛, 예종 2년(1107) 慈淨國尊에 의해 각각 중수가 이루어졌다. 조선시대는 세종 31년(1449) 信眉선사가 중수했고, 영조 11년(1735)에 소실된 암자를 卓融선사가 재창하였으며, 순조 3년(1803) 就俊師가 중수했다고 전한다.
복천암 신중도(규모 ; 190㎝×158㎝)는 1795(淸 乾隆 60)년에 제작되었다. 이 불화는 원래 법주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었으나 후에 복천암으로 移安되어 이 암자의 중심전각인 극락보전의 향우측 벽면에 현괘되어 있다.화면구성은 遠近的 群集구도를 써서 위로 가면서 화면에 등장하는 尊像들의 크기가 자연스럽게 축소되고 있다. 화면 상단 좌우에 각각 제석천과 금강천(위태천)을 부각시키고 좌우상하단에 각각 龍王․山神․日․月宮天子․明王 童女․童子․天女 등 여러 권속들이 등장하고 있다.색채는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하였으며 부분적으로 청․황․분홍 또는 무채색이 다양하게 설채되었다.이 신중도는 조선시대 18세기후반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조선시대 18세기 불화하면, 소재․표현기법․畵格이 조선후기를 통틀어 가장 질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선후기 신중도는 대개 帝釋․梵天, 혹은 帝釋․梵天․金剛天을 크기 면에서 대등하게 묘사하는 것이 통례인데, 이 작품은 帝釋․金剛天만의 2존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범천은 화면의 향좌측 상단에 작게 一群을 이룬 형태로 묘사하였다. 이 점은 이 불화를 그린 畵師인 愼兼이 圖像 구성에 변화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이 불화는 재질(비단)과 구도, 채도가 높고 선명한 색채와 세필에 의한 정교한 선묘, 다양하고 섬세한 문양, 사실적인 지물이나 복식표현 등에서 18세기불화의 전형양식을 견지하고 있다. 각 존상들의 衣服바탕과 옷단에는 草花文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花紋이 정교하게 들어가 있어, 비록 18세기 후반작품이지만 그 이전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畵格을 갖추었다.이 불화를 그린 首畵師인 退雲堂 信謙은 18세기후반부터 19세기 초중반에 걸쳐 주로 경상도지역에 화적을 남기고 있는 주목받는 화사이다.극락보전 아미타불 우측에 봉안되어 있는 신중도는 앞에는 별도의 제단이 있으며 중앙에 위태석천과 제석을 주존으로 하여 여러 무장신을 배치한 신중탱화로 주색은 적색과 녹색이며 배경으로는 황토색이 사용된 탱화이다. 위태천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나 옆의 제석도 비슷한 크기로 그려져 있어 같은 비중을 두고 그린 것으로 18세기 후반에 유행한 제석천룡탱화로 화기문에 의하면 조선후기 대표적 화승인 신겸(信謙)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탱화로서 충청도 지역에 남아있는 드문 사례이다. 작품 제작수법이 뛰어나고 당시 대표적 화승이 작업하였으며 조성 기록이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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