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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성면 조웅충신문(仰城面 趙熊忠臣門)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앙성면 조웅충신문(仰城面 趙熊忠臣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6. 4. 11:50

 

 

 

 

 

 

 

 

 

 

 

 

 


조웅에 대하여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의병장.


 

  • [가계]
  •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백기(白旗). 개국공신 조인옥(趙仁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조일(趙逸)이다.

  • [활동사항]
  • 충주 출신의 조웅은 1591년(선조 24) 조헌(趙憲)의 천거로 선전관이 되었다가 얼마 후 사직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조강(趙綱)을 따라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나누어 의병을 이끌고 한성으로 가는 길목인 충주 앙성면 태자우(현 능암리 대평촌)에서 북상하는 왜군을 맞아 격전을 벌여 물리쳤다.

    이 사실을 충청도체찰사가 행재소의 임금에게 알려 충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임하지 않았다. 조웅은 깃발을 모두 흰 것으로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이르기를 백기장군이라고 하였다. 또한 8도의 의병 중에 “호서 백기장군영남홍의장군(곽재우)이 가장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용맹하였다. 1592년 8월 왜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후 전열을 가다듬고 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짙게 깔린 안개 속에서 적에게 포위되어 중과부적으로 사로잡히게 되었다. 왜군이 항복을 권했으나 저항하다가 1592년 8월 4일 사지가 찢겨지는 고통을 겪으며 순절했다.

  • [묘소]
  •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에 있다.

  • [상훈과 추모]
  • 사후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오르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1618년(광해군 11)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1690년(숙종 16) 정려가 건립되었다.
    성면에 위치한 조웅 장군 충신문 전경.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사면에 홍살을 두르고 있으며, 장대석으로 낮게 쌓은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이익공 형식의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건물에 모두 단청을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