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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삼승면 선곡리 금화사가 자리하고 있는 계곡암벽에 새겨진 암각자입니다.
계당(溪堂)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최흥림(崔興霖, 1506~1581)이 낙향해 은거하며 공부했던 건물이다. 최흥림의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현좌(賢佐), 호는 계당(溪堂)이다. 최흥림은 명종 1년(1545)에 을사사화로 많은 사림(士林)들이 화를 입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보은으로 낙향하여 줄곧 이곳에 은거하였다. 이곳에서 성운(成運), 조식(曺植), 성제원(成悌元) 등과 교류하며 학문을 닦았고, 후학을 가르쳤다. 이곳은 순조 15년(1815)에 금화서원이 창건되자 강당으로 사용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종도리(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장여(도리 밑에서 도리를 받치고 있는 길고 모진 나무)에 “단기 사삼십오년 임술 팔월 십칠일 기미 미시 입주상량 술좌(檀紀四三十五年壬戌八月十七日己未未時立柱上樑..
1814년(순조 14) 최덕진(崔德鎭)이 선조인 삼지 최운과 최흥림의 사묘를 건립하고 지방 유림 강재문외 105인의 찬동을 받아 감사에게 전의하여 승인을 받아 그 이듬 해인 서기 1815년에 창건하였다. 처음은 화순최씨 문중서원으로 건립되었으나, 최흥림의 스승 성운과 함께 교유한 조식 성제원(成悌元) 세 분을 추향하여 다섯 분을 모시고 후학을 모아 강학하였다. 사액을 받지 못한 미사액 서원의 하나다. 1871년 (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17년 지방유림의 주선으로 복설하였다. 사우의 동남쪽 계곡 가에 있는 계당(溪堂)은 최흥림의 호를 따라 명명한 건물로 그가 을사사화 이후 은거하여 성리학의 연마에 정진하던 곳이다. 금화서원 창건 후에는 강당으로 쓰였다. 1764년(영조 40) 중수하였고,..
삼승면 선우실에 있는 금화서원을 찾았습니다. 보은군지에 소개되여 있는 사현석(四賢石)이라는 암각자를 찾으려고 방문했지만 사현석(四賢石)이라는 암각자는 찾지 못하고 취와계(醉臥溪)라는 새로운 암각자를 만날수 있었습니다. 힘있게 멋진 필체로 계곡 암벽에 새겨 놓았습니다. 마음 맞는 벗을 만나 시국을 논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으며 한잔 두잔 나누는 술에 흥에 취하고 시(詩)에 취하고 서로의 나이를 떠나 학문을 논하다가 물소리 시원한 계곡에서 흥에 겨워 암벽에 이 글을 새겼을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록 원하는 암각자는 만나지 못했지만 새로운 암각자를 만났다는 기쁨이 그 아쉬움을 상쇄시켜 줍니다. 다시 한번 더 준비를 하여 四賢石이라는 암각자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 보야야 할거 같습니다. 금화서원 계당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