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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동 대원사철불좌상(芝現洞 大圓寺鐵佛坐像)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지현동 대원사철불좌상(芝現洞 大圓寺鐵佛坐像)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10. 6. 20:13

 

 

 

 

 

 

 

 

 

 

 

 

 

 

 

 

 

 

 

 

 

 

 

 

 

 

 

 

 

 

 

 

 

 

 

 

 

 

 

 

 

 

 

 

 

 

 

 

 

 

 

 

 

 

 

 

 

 

 

 

 

 

 

 

 

 

 

 

 

 

 

 

 

 

 

 

 

 

 

 

 

 

 

 

 

 

 

 

 

 

 

 

 

 

 

 

 

 

 

 

 

 

 

 

 

충청북도 충주시 지현동 대원사에 있는 고려 후기 철불좌상.충주 철불좌상은 충주시 지현동 587-12번지 충주공업고등학교(구 충주공업전문학교) 옆 노천에 방치되었는데,관아공원(구 중원군청) 내로 옮겨졌다가 1959년부터 대원사 앞뜰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서 그런지 광배와 대좌, 두 손이 없어졌다. 대원사로 옮겨져서도 별도의 전각 없이 대웅전 앞 오른쪽 담장 옆에 안치되어 있다가 1982년 중원 문화권 개발사업의 하나로 충주시의 보조를 받아 대웅전 오른쪽에 단칸의 보호각을 짓고 봉안하게 되었다.보호각을 만들어 봉안하면서 두 손은 나무로 만들어 끼웠다.그러나 1994년에 대원사 화재로 보호각은 소실되었고 불상은 충주박물관으로 잠시 이전 관리되었다.1998년에 대원사 극락전을 새로 지은 후 다시 옮겨져 봉안되고 있다.충주 철불좌상과 관련하여 1770년(영조 46년) 무렵에 지은 『약전원수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633년 절을 창건한 후 높이 3척 2촌 5푼의 철조석가좌상을 조성하여,염해평 서쪽(곧 충주공업고등학교성남초등학교 부지 일대로서 충주시내의 중심부에서 마즈막재로 향하는 안림로의 오른쪽 길가)에서 서쪽을 향하게 봉안하고 그 뒤로 수 백 년을 내려왔다.”고 한다.그간 불상이 노천에 방치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들이 건물을 짓고 철불을 봉안하였는데,당우가 소실되거나 또는 향불을 피우고 예불을 올리면 꼭 괴질이 유행하므로 이 철불을 광불(狂佛)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충주 철불좌상은 충주 단호사에서 전하는 철불좌상과 같은 양식의 상으로 크기만 조금 작다. 머리는 약간 숙인 듯하며 나발인데 육계는 낮고 둥근 편이다. 미간에는 2.5㎝의 백호공이 있고,상호는 이마가 넓고 턱으로 내려올수록 좁아져서 양쪽 볼에 살이 빠져 보이므로 풍만한 인상은 아니다.

눈썹은 가늘게 반원형이며 눈은 반만 뜨고 눈꼬리가 길게 치켜 올라가게 표현되었다.코는 작으며 인중이 짧고 입술이 도톰해지는 등 고려시대의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가슴과 어깨가 넓고 당당하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법의는 통견이며 가슴 앞에 매듭을 표현하였다.옷주름은 팔에서 사선을 긋고 가슴 아래에서 U자형으로 표현하였다.불상 전체에 비해 무릎이 넓어서 안정감을 주고 있으나, 옷주름의 표현 등은 형식화되어 있다.두 손은 없어져 정확한 수인은 알 수 없으나 아미타 수인으로 추정된다.단호사 철불좌상과 같은 양식 계열에 속하는 철불로, 대의의 착의형식이나 도식화된 표현 등으로 볼 때 조성 시기는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충주 지역은 우리나라 3대 철산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철불이 많이 조성되었다.

철불은 쉽게 산화하여 파손되는 경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충주에서 3구의 철불이 현존하는 것으로 보아 더 많은 불상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특히 3구 가운데 대원사의 충주 철불좌상과 단호사 철불좌상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상으로,아마도 같은 시기에 같은 공방에서 조성된 상들로 추정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충주 지역에는 특유의 불상유파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충주디지털 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