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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노은면 가신리명성황후피난유허지(老隱面 佳新里明成皇后避難遺墟址) 본문
이시영은 이시일(李時鎰)[1818~1900]의 잘못된 기록으로 보이며, 어머니를 모시고 초가집에 가난하게 살며 나무를 팔던 총각으로 명성황후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명성황후가 50여 일간의 피난 생활을 마치고 환궁한 후 그 은공으로 음성군수가 되어, 마을에서는 그의 집을 ‘이음성 집’이라고 불렀다. 『고종실록(高宗實錄)』에는 행궁과 비석 건립을 위한 상소가 기록되어 있으며, 가신리 신흥생활관 앞 담장 밑에는 격식과 형식을 갖춘 화강암 지대석과 주초석 등이 흩어져 있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 밖에 마을에도 화강암 초석과 지대석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큰 규모의 건물을 조성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 노은면 우성리에 살던 김하석의 단자를 통해, 행궁을 건립하려고 초석과 목재 등을 마련하다가 동학농민운동으로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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