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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면 탑동삼층석탑(水安堡面 塔洞三層石塔)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수안보면 탑동삼층석탑(水安堡面 塔洞三層石塔)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8. 12. 09:47

 

 

 

 

 

 

 

 

 

 

 

 

 

 

충북 수안보 탑동에 소재한 봉불사 앞쪽 개울가에 위치한 고려후기시대의 석탑이다.

반출되여 수안보 시내 호텔에 정원 장식용으로 있던 것을 마을주민들이 다시 제자리로 옮긴것이라고 한다

 

탑동 삼층석탑은  개울가에 있는 넓은 암반을 기초로 하여 하부에 시멘트를 마련하여 세워놓았다.

석탑이 원위치인지 불분명하고 심하게 훼손된 것을 후대에 크게 보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옥개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후대에 새롭게 보강된 부재들로 보인다.

 

석탑은 일반적으로 사찰에 세워져 신앙과 예배 활동의 중심적인 대상이 되었다. 한편 석탑은 불교적인 성격으로서가 아니라, 표식이나 비보 같은 기능이나 당대의 사상적인 측면들이 반영되어 건립되기도 하였다. 탑동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는 마을은 오래전부터 탑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탑동이라고 불리고 있다.

만약 이 석탑이 원위치라면 불교적인 성격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건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수안보면 탑동 개울가에 세워져 있다. 바로 옆에 민가가 있다.

 

탑동 삼층석탑은 옥개석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후대에 보강된 부재들로 보인다.

석탑은 대형 암반 위에 세워져 있는데, 하단부에 시멘트를 마련하였다.

그 위에 사각형 대석을 놓아 기단부를 올렸다. 기단부는 단층 기단으로 표면에 정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깔끔하지 못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석탑을 보수하여 세우는 과정에서 새롭게 보강된 부재들로 보인다.

1층 탑신석은 원래의 부재로 보이지만 마모가 심하여 정확하지는 않다. 3개의 옥개석은 원래의 부재들이다.

옥개석은 하부에 3단의 받침을 낮게 마련하였으며, 처마부를 두툼하게 하여 둔중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합각부 처마부는 살짝 들어 올려 반전(反轉)을 주었다. 낙수면(落水面)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처마 쪽으로 내려오도록 치석했다.

합각부는 낙수면 안쪽 면에 비하여 다소 높게 치석하여 옥개석의 전체적인 외관을 두툼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옥개석 상부에는 별도의 받침을 두어 상부에 결구되는 탑신석을 받치도록 했다.

현재 4층에 남아 있는 옥개석은 원래의 부재가 아니다. 이 석탑은 많은 부재들이 새롭게 보강되었지만 원래부터 소규모의 석탑으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고,

옥개석의 치석 수법이 둔중하여 고려 후기에서도 시기가 다소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탑동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많은 부재들이 새롭게 보강되어, 원래의 석탑이 크게 훼손된 상태에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재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근 개울가에도 근세에 건립된 석탑들이 세워져 있다.

개울가에 건립된 석탑들은 시기가 상당히 떨어져 탑동 석탑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개울가에 건립된 석탑은 이곳에 숙박시설을 짓기로 하고 정원석으로 들어왔던것이라고 한다 

그 후 숙박시설 짓는것이 포기되면서 그냥 방치되여 있던것을 뜻있는 주민이 현재에 위치에 세웠다고 한다 

탑동에 세워진 삼층석탑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는 듯 하다

 

 

탑동 삼층석탑은 마을화관 앞에 세워져 있는 온천리 석탑과 함께 온천리 지역의 불교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한편 탑동 삼층석탑 앞쪽으로 형성된 능선상에 봉불사가 있는데, 경내에 약사여래 석불이 봉안되어 있다. 석불은 심하게 파손되었지만,

불신의 비율이 잘 어울리고 상호가 비교적 준수한 것으로 고려시대 조성된 석불로 보인다.

 

 

 

 

봉불사는 현재 비여있는 상태이다

봉불사는 세워진지는 그리 오래되지않았다

육이오전쟁후 동네주민들의 힘으로 세운것이라고 동네주민들이 말을 해준다

봉불사는 거주하는 사람이 없으니 쓸쓸함이 더하고 폐사위기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