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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백운면 평동리 이희직선생기념비(白雲面 平洞里 李熙直先生紀念碑) 본문
이희직은 이 고장에서1866년에 태어나서 1922년 별세했는데 고종 때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내고 천성이 강직하고 인덕하여 자선사업에 힘을 기울인 바, 총 가산(家産) 300석 토지를 서울 중앙중학교, 양정중학교, 휘문중학교 등 10여개 교에 희사하여 신진 육영사업에 공헌하였다. 이러한 큰 뜻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사람들이 비를 세웠으며 오늘 날 까지도 그 공을 칭송하고 있다.
현재는 제천에서 충주간 도로 개설로 인하여 면사무소 앞으로 이전하여 보호하고 있다.
서구적인 신식학교가 19세기 후반 우리 사회에 도입된 이후 갑오교육개혁, 대한제국기 그리고 일제식민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주도적인 학교체제로 정착해 나가게 된다. 신식학교가 처음부터 조선의 민중들에게 복음으로 비추어진 것은 아니었다. 신식 학교는 외세와 침탈의 상징이기도 했다. 따라서 신식 학교에 대해 처음부터 환영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식민지기가 경과되면서 신식 학교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오고, 자녀 교육에 대한 요구도 달라지면서 확산되어 나가게 된다, 물론 일제 식민지 당국의 학교교육 정책 변화와 애국계몽운동으로 대변되는 교육운동의 영향도 중요한 변수인 것이 틀림없다.
비석의 전면에는 조선교육계지의인이희직선생기념비(朝鮮敎育界之義人李熙直先生紀念碑)이라 적혀있고 후면에는 이선생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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