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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면 평동리 이소응선생창의숭모비(白雲面 平洞里 李昭應先生倡義崇慕碑) 본문
백운면 평동리 마을회관옆에 위치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지정현충시설로 지정 관리되고있다.
이소응 선생은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춘천에서 봉기한 의병항쟁의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의병의 명분을 밝히고, 전국에 격문을 보내 거사를 촉구하며 친일파를 처형하기도 했다.
유인석 의진에서 활동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소응 선생은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습재(習齋), 이명(異名)은 직신(直愼)이다. 강원도 춘천(春川)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져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나자, 1896년 1월 춘천부에 집결한 지방 유생 유중락(柳重洛)·이만응(李晩應) 등과 농민 1,000여 명에 의해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대의 아래 일본을 오랑캐 왜노(倭奴)로 규정하는 등 의병의 명분을 뚜렷이 하는 한편,
전국에 격문을 보내 함께 거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때 정부에서 춘천부 관찰사겸 선유사(宣諭使)로개화파 관료인 조인승(曺寅承)을 임명하여 파견하자 그를 친일파라 하여 참형(斬刑)하였다.
이어 남한산성의 경기의병과 연합하여 서울을 공격하기로 계획하였으나 관군의 공세로 전력이 약화되자 지평군수 맹영재(孟英在)를 찾아가 협조를 요청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후 제천 유인석(柳麟錫) 의진에 들어가 활동하다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춘천 의진은 종형제 이진응(李晋應)과 이경응(李景應)이 지휘하였다.
저서에 춘천의 의병운동과 유인석 의진의 활동상황을 기록한 《습재연보》, 《습재선생문집》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비석은 이소응선생 창의숭모비라고 음각되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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