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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 지산리 김수온부조묘(報恩邑 芝山里 金守溫不祧廟)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보은읍 지산리 김수온부조묘(報恩邑 芝山里 金守溫不祧廟)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2. 7. 5. 07:40

 

김수온부조묘(金守溫不祧廟)는  

지산리에 있는 영산 김씨 종증 소유의 지방유형문화재 제 60호, 좌리공신 영산부원군 김수온의 부조묘이다. 1487년 성종(成宗) 18년에 보은읍 종곡리에 창건되었던 것을 1664년 현종(顯宗) 5년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 1947년 후손 김태현(金泰鉉)이 증수하였고 1981년에는 해체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김수온은 본관 영동(). 자 문량(). 호 괴애() ·식우(疣). 시호 문평(). 1438년(세종 20)에 진사가 되고,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교서관정자()로 있을 때 세종의 특명으로 집현전(殿)에서 《치평요람()》을 편찬하였으며, 1445년(세종 27) 승문원교리()로서 《의방유취()》 편찬에 참여하고, 부사직()으로 있을 때는 《석가보()》를 증수()하였다.

1449년(세종 31)에 병조정랑()이 되고, 1451년(문종 1) 전농시소윤()이 되었으며, 1457년(세조 3) 문과중시()에 응시하여 급제하였고, 중추원첨지사()가 되었다. 1459년 한성부윤(), 1466년 발영시()에 장원하였고, 같은 해에 실시된 등준시()에 다시 급제하여 중추부판사()에 오르고,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 4등에 책록되어 영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474년(성종 5) 중추부영사()에 이르렀다. 학문과 문장에 뛰어나 서거정() ·강희맹() 등과 문명()을 다투었으며, 사서오경()의 구결()을 정하고, 《명황계감()》을 국역()하는 등 국어 발전에 힘썼다. 세종 ·세조 등 불교를 숭상하는 임금을 도와 불경()의 국역()과 간행()에도 공이 컸다. 문집에 《식우집()》이 있다. (네이버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