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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면 화양리 읍궁암(靑川面 華陽里 泣弓岩)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천면 화양리 읍궁암(靑川面 華陽里 泣弓岩)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2. 11. 8. 18:15

 

화양구곡의 명칭은 대부분 자연의 뛰여난 경관을 보며 명칭이 정해진 것들이 많은데 그 중 유일하게 경관과는 상관없는 듯 아픔을 간직한 곳이 제 3곡인 읍궁암이다.읍궁암은 우암 송시열의 애절한 사연에서 비롯된 것이다.읍궁이란 명칭의 유래는 중국의 순임금이 죽자 신하들이 활(弓)을 잡고 울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북벌정책의 웅대한 뜻을 같이 했던 송시열이 효종대왕의 승하소식을 듣고 서울을 향하여 목놓아 울었던 곳이라 하여 읍궁암이란 명칭을 얻게 되였다.호란은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국왕이 삼전도에 나아가 항복을 한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당대 많은 선비들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국가의 수모요 치욕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아직 아물지 않은 역사의 상흔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바는 오직 오랑캐나라에 대한 복수요 국가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그 정점에 있던 효종대왕의 승하는 수많은 선비들의 아픔이요 치욕이였을 것이다.

 

읍궁암이란 명칭은 움암의 제자였던 권상하가그의 스승인 우암이 목놓아 울었던 바위라 하여 읍궁암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계곡에 계곡물과 접하여 읍궁암은 자리하고 있고 그 위로는 읍궁암을 기리는 읍궁암비가 자리하고 있다.

읍궁암비의  비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先生嘗於孝廟諱日 曉起痛哭於巖上 仍吟一絶 後人號其巖曰泣弓 盖取荊湖故事也 歲丁酉方伯尹公憲柱 謁廟訖大書泣弓三字刻石 視後其誠意至矣 尙夏謹書先生絶句於其末云 此日知何日 孤衷上帝臨 侵晨痛哭後 抱膝更長吟


우암선생께서 일찍이 효종의 휘일에 일어나 바위 위에서 통곡하고 일절을 읊었다. 뒷사람들이 그 바위를 불러 읍궁이라고 하였다. 대개 형호의 고사를 취한 것이다. 정유년 방백 윤헌주가 사당을 참배하고 ‘읍궁암’ 석자를 크게 써서 바위에 새기어 후세에 보이니, 그 진실한 뜻이 지극하다. 권상하가 삼가 선생의 절구를 그 말미에 쓰니,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외로운 충정만 하늘에 닿았도다. 새벽이 되도록 통곡만 하다가, 또 다시 엎드려 무릎 끌어안고 탄식하노라” 라고 하였다.

2010년 9월에는 화양구곡 3곡 읍궁암 위에 세워 놓은 것으로 보이는 읍궁암비가 흙 속에 묻혀 있다가 인근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1679년(숙종 5) 5월 4일은 효종이 탄생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자 스무 번째 제삿날이다.

이 날도 우암은 새벽에 일어나서 통곡하였는데, 슬픈 마음을 더욱 가눌 수가 없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효종 기일의 감회를 읊다>


湯文比德敢云阿 탕 임금 문왕 같은 덕 감히 아첨이라 하겠는가

千一昌期驗濁河 천재일우 좋은 기회 황하에 시험했네

奉諱廿年還一甲 가신 지 이십 년에 탄생한지 60년이 돌아왔으나

呼天天亦奈吾何 목 놓아 울어봐도 나에게 어찌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