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보은읍 학림2리 강재위영세불망비(報恩邑 鶴林2里 姜在渭永世不忘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보은읍 학림2리 강재위영세불망비(報恩邑 鶴林2里 姜在渭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7. 29. 21:06

 

보은읍 학림2리 마을회관 뒷편에 자리하고 있는 선정비이다

비석의 마모가 심하여 글씨는 전체적으로 판독할수 없다

오위장강재위영세불망비(姜在渭永世不忘碑)라는 글씨는 판독할수가 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光緖 13년(丁亥년10월) 으로 비석 뒷면에 음각되여있다

광서13년은 조선 고종24년 1887년이다. 비석은 두동강이 났지만 시맨트로 접합하였다

비석의 관리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비의 크기는 92*34*13이다.

 

 

오위의 으뜸 벼슬로, 초기에는 종2품관 12명을 두어 그때 그때 각 위를 나누어 맡아 통솔하게 하였으며, 모두 타관()이 이를 겸직하였다.

5위가 평상시에는 주로 입직()과 행순(:도성 내외를 순찰하는 일) 및 시위()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5위장들은 외소() ·남소() ·서소(西) ·동소() ·북소() 등 다섯 위장소()에 번을 갈아 각각 1명씩 입직하여 왕의 지명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순행에 있어서는 5위장이 군사 10명을 인솔하고 시간을 나누어 순찰한 뒤 이상 유무를 직접 왕에게 보고하였다.

나라에 경사가 있어 국왕에게 축하를 드리는 조하()가 있을 때에는 위장이 그 군사를 이끌고 궁정에 정렬, 시위하였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5위의 기능이 대폭 축소되어 궁성 숙위(宿)만을 맡게 되자 5위장의 기능도 이것에 한정되어 품계를 종2품에서 정3품으로 내리고 3명을 증원하되 2명을 문관으로 충당하여 위장소의 사무를 맡아보게 하였는데 이를 조사오위장()이라고 하였다. 오위장은 1882년(고종 19) 군제개혁 때 5위와 함께 폐지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위장 [五衛將] (두산백과)


 

 

 

 

 

학림리는 본래보은군 산내면의 지역으로서, 함림산성(含林山城) 밑이 되므로 함림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함림(內含林), 외함림(外含林), 율지리(栗枝里), 산외면의 대암리(大岩里)를 병합하여 학림리라 해서 보은읍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