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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물관 송달인교지(淸州博物館 宋達仁敎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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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물관 송달인교지(淸州博物館 宋達仁敎旨)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8. 22. 13:13

 

송달인을 사헌부 집의에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송달인(1809-1873)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봉상시판관(奉常寺判官), 사간(司諫),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자는 중겸(仲兼)이다. 청주(淸州)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송도정(宋道鼎)이고, 아버지는 송일렴(宋一濂)이다.

1837년(헌종 3)에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에 5인으로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관직은 1841년에 지평(持平), 봉상시판관(奉常寺判官) 등을 지냈다. 봉상시판관을 재임 시 영천(榮川)으로 유배되기도 하였으나 곧 풀려나

1858년(철종 9)에 헌납(獻納), 장령(掌令)을 거쳐 사간(司諫),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남면 법주리에 있다.

 

 

사헌부 집의란 조선시대 사헌부(司憲府)종삼품(從三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다.
1401년(태종 1)에 중승(中丞)을 고친 이름으로, 중승(中丞) 또는 아장(亞長)이라고 하였으며,
대사헌(大司憲: 從二品) 이하 장령(掌令: 正四品)·지평(持平: 正五品)까지의 다른 사헌부 관원과 함께 통칭 대관(臺官)이라고 하였다. 학식(學識)과 덕행(德行)이 높아서 이조(吏曹)로부터 천거(薦擧)된 대관을 특히 남대(南臺)라고 하였다. 한번 이 벼슬을 지낸 사람은 아래 벼슬을 제수 받지 못하였다.
모든 대관은 사헌부의 청환직(淸宦職)으로, 문과 급제자 중 청렴 강직하여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를 굽히지 않고 직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므로,
승문원(承文院), 성균관(成均館), 홍문관(弘文館) 등을 거친 젊고 기개가 있는 인재들이 임명되었는데, 그만큼 직무가 막중하기 때문이었다. 이조전랑(銓郞)과 함께 전 조선시대의 사족사회(士族社會)의 틀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