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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국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惠國寺 大雄殿 木造三尊佛坐像) 본문
혜국사는 주흘산 중턱에 위치하여 한번 쯤 이라도 이곳을 등산해 본 사람이라면 찾아 본 사찰일 것이다.
차량을 이용해서 가려면 문경새재도립공원 내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접근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문경에 있는 전통사찰 중 봉암사 다음으로 접근하기가 힘이 드는 곳 중의 하나일 게다.
혜국사는 신라 말 보조 체징(普照 體澄, 804~880)이 847년(신라 문성왕 9) 창건하여 처음에는 법흥사(法興寺) 고 했다. 같은 해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굴산사(범일국사 창건) 창건되기도 했으며 이 후의 자세한 혜국사의 연혁은 알 수 없다. 다만 고려말 공민왕(재위 1351~1374)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이곳에 머물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는 이 절에서 승병이 많이 나와 나라를 구하는 데 크게 공헌했으므로 나라에서 절 이름을 혜국사라고 했다. 부속 암자로는 안정암(安靜庵)이 있다. 유적또는 유물 중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음전, 산신각, 큰방, 요사채 등이 있다.
혜국사의 창건과 유래 등으로 보아 문화유산이 많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에 비해 문화재는 그리 많지 않다. 혜국사 초입부분에 있는 부도군과 대웅전에 있는 목조삼존불좌상이 현재 혜국사를 대표하는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 목조삼존불좌상이 2009년 7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1호로 지정되어 사격(寺格)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문화재 지정조사시 삼존불의 복장(腹藏)을 조사한 결과 좌협시보살상에서 조상발원문(造像發願文)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에 의하면 이 삼존상은 수화승(首畵僧) 김문(金文)에 의하여 조성되어 강희(康熙) 23년(1684)에 금학사(金鶴寺:문경읍 마원리)에 안치했던 불상으로 판명되었다.
삼존불상은 중앙의 본존과 좌우 협시보살로 이루어진 목조삼존불좌상이다. 본존은 하품중생인을 맺었으며 오른발을 위로 하여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아미타여래좌상이다. 머리는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는데 불상 높이의 1/3에 달할 정도로 매우 크다. 어깨의 폭이 머리에 비해 좁기 때문에 약간 왜소한 인상이다. 하반신은 상반신보다는 폭이 넓고, 무릎에서 엉덩이에 이르는 안길이도 길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좌우의 협시보살상도 본존과 그 형식이 거의 유사하다.
대체적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이후인 17C 전반기부터 조선말까지 많은 불상들이 전국적으로 제작 되었으며 불상 내부에 복장기문(腹藏記文)들이 들어 있어 제작연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복장유물이 훼손된 경우와 사찰의 사정으로 인하여 복장유물과 기록 등의 자료를 분석하지 못해 정확한 연대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불상의 양식적인 면과 조각 수법을 통하여 그 제작 기법과 연대를 추정할 수 있으며 사상적 조성배경을 파악하여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더욱더 빛나게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인조, 숙종(1623~1724) 년간인 17C 목조불상이 전국적으로 분포하나 경상도 및 전라도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한편 문경 혜국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도 이상과 같이 조사된 목조불상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삼존불상(三尊佛像)으로 보아진다.
이 삼존불상은 대웅전에 모셔졌으므로 석가여래삼존상(석가·문수·보현)이라야 만이 그 격식을 갖출 수 있겠으나 혜국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은 아미타여래삼존상(아미타·관음·대세지)이므로 극락전이나 아미타전에서 옮겨져 모셨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조선시대 불존상(佛尊像)이 전각(殿閣)의 명칭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가끔 조사된 바 있다. 문화재 지정 조사시 복장결과로 볼 때는 금학사의 극락전이나 아미타전에 모셨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문경문화지]
혜국사의 목조삼존불좌상 중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는 좌우협시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보다 그 규모가 크다.
몸체의 비례미에 있어서는 불신(佛身)에 비해 두상은 크며 고개를 숙이고 어깨는 매우 좁다. 무릎은 매우 크게 부각시켰지만 안정된 모습이다.
얼굴은 방형이지만 둥근 느낌으로 원만하며 미간사이에 백호가 있다. 눈과 입은 가늘고 작은 편이며 귀는 매우 길어 이마까지 닿았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약하게 나타난다.
불상의 머리는 몸체에 비해 크게 보인다. 나발의 형태는 소라형인데 단정하게 표현되었다. 중심 육계(肉?)는 낮고 반달형이며 정상육계는 원통형으로서 높게 나타나는데 이러한 양식은 15C 중엽부터 성행하였다.
가사는 대의(大衣)안에 승각기(僧脚崎, 윗도리에 걸치는 의복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내려가는 의복)를 입고 있으며 우측 어깨와 팔에 편삼을 걸치고 있다. 즉 변형 통견식 착의법이다. 이러한 복식과 같은 양식의 불상은 상주 용흥사 목조아미타삼존좌상(1647년),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49년) 등에서 찾아볼 수 있어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가사 중앙에 일정한 간격의 넓은 옷 주름, 팔자형(八字形)의 앞자락, 잔잔한 물결처럼 표현한 주름, 편삼의 유연성, 가사 끝자락 의습 표현 등은 제작자인 수화승 김문의 예술적 기교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보아진다.
좌·우협시 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역시 그 양식적 특징을 같이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보살상의 형식은 본존불과 구별되어 나타나는데 대체적으로 그 규모가 조금 작고 여래상보다 화려한 화관과 지물(持物)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두 협시 보살 모두 결가부좌한 자세이다. 화관에는 장식적 장엄이 세밀하고 다양하다. 두상의 머리는 상투를 높이 메고 있으며 그 옆 양쪽 어깨로 머리카락을 꼬아서 두 가닥으로 내리고 있는데 머릿결을 살려서 매우 섬세하다. 특히 좌협시 관음상은 오른손에 정병(淨甁)을 들고 있는데 그 형태는 율동적이며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혜국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을 비롯한 이러한 양식은 17C중반기에 나타나는 즉, 신체에 비해 큰머리, 앞으로 숙인 듯한 자세, 머리와 중간 육계의 구분 없는 둥근 머리, 방형의 얼굴 등 17C 목조 불상양식의 보편적인 점을 그대로 표현되면서도 큰귀, 외소한 어깨, 상체에 비해 하체부의 과장된 듯한 무릎표현, 간결한 의습 등에서 독특한 조형적 예술성을 나타낸 조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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