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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 대신리 창선대부홍양정,영산신씨묘소(米院面 大新里 彰善大夫洪陽正,靈山辛氏墓所)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미원면 대신리 창선대부홍양정,영산신씨묘소(米院面 大新里 彰善大夫洪陽正,靈山辛氏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3. 18. 16:29

 

금성대군의 신도비가 있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신도비를 보며 좌측의 산길을 따라오르면 우측능선에  묘역이 보인다.후손들에 의하여 묘역이 유지 관리되고 있다.주위에 금성대군의 아들인 함종군의 묘도 있다.금성대군의 제단은 신도비를 보며 우측으로 길을 접어들어서 산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이정표등이 없어서 초행길에는 조금 난감할수도 있으니 유의하여야 한다.

 

 

 

자손의 폐고(廢錮)와 설원복권(雪寃復權) 삼세 봉작지은(三世 封爵之恩)과 관련이 있는 인물은 금성대군의 차증손인 이 의(李 義) 홍양정이다.금성대군이 사사하자 나라에서는 선원록에서 삭적하고 휘자 아래[죄사]라는 주를 달아 후일에 그에 자손이 있더러도 서용(敍用)치 못하게 하였다. 부부인 전주최씨는 유복자 함종군(咸從君)을 낳으심에 세상에 알려질까 하던중 마침 비복이 여아를 낳게되자 바꾸어 기르시니 이로 인해 대군의 가계는 이여지게 되였다. 그 자손들은 현재의 청주시 북이면 대율리에서 대대로 살아오면서 어려운 삶을 영위해왔다.

 

금성대군의 증손 홍양정은 천질이 활달하신 분으로 년기 18세에 금성대군의 억울하신 일을 나라에 품달하리라 생각하고 척수단신(隻手單身)으로 상경하여 대궐문앞에서 거적자리를 깔고 석달동안을 호소함에 대신들이 이를 알고 중종대왕께 그 뜻을 아뢰니 왕은 삼세승습지명(三世承襲之命)을 내려 관직을 봉하실새 금성대군은 흥록대부 정민공(興綠大夫 貞愍公) 그의 부인은 완산부부인(完山府夫人) 그 아들 맹한은 소덕대부 함종군(紹德大夫 咸從君) 부인 충주지씨는 군부인 손자 영헌은 승헌대부 동평군  부인 전의이씨는 현부인 증손 삼명증 장손 인은 정의대부 덕천군 부인 청주양씨는 정부인 차증손 의(義)는 창성대부 홍양정  부인 영산신씨는 신부인 셋째증손 례(禮)는 소의대부 청리부정 부인 순창조씨는 신부인으로 봉하니 중종 기묘년의 일이다.-미원면지의 글을 옮겼는데 역사적 근거가 있는 서책에 의하면 금성대군이 홍록대부 정민공의 시호를 받은때는 1739(영조15년)이라고 전해진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미원면 대신리에 자리하고 있는 홍양정 이 의(李 義)와 그의 부인인 신부인 영산 신씨의 묘소이다. 근간에 후손들에 의해 묘소가 정비된 듯 하며 잘 관리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