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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화산리 김태용공덕비(沙梨面 禾山里 金泰鏞功德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사리면 화산리 김태용공덕비(沙梨面 禾山里 金泰鏞功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3. 3. 12:43

 

사리면 화산리 화산삼거리에서 소수면 고마리로 넘어가는 길목 초입에 있는 안동인 김태용의 공적비이다.공적비의 전면에는 농세김태용선생공덕비(聾世金泰鏞先生功德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뒷면에는 선생의 행적이 기술되여 있다.비석은 1994년 6월에 신촌부락민 일동으로 건립하였다.

 

 

 

 

 

김태용(1905(고종 42)~1972)은 자는 한웅(韓雄), 호는 농세(聾世), 본관은 안동으로 안렴사(安廉使)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용증(金龍曾)이다. 타고난 성품이 너그럽고 기개가 강직하여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일찍이 개화에 눈을 떠 지역 내에 후학들이 공부할 학교가 없어 배우지 못하고 있는 점을 걱정하였다.이에 사리면 이곡리(梨谷里)에 사는 이태호(李台鎬) 씨를 찾아가 논의하니 그가 사재(私財) 1백석지기를 희사하였다. 김태용도 현금 오천 원을 내놓아 이태호씨가 희사한 대지 1,220평 위에 3개의 교실을 신축하여 1944년 학교를 세웠다. 1946년에 화곡국민학교 부형회 회장을 맡았었다. 이렇듯 육영사업(育英事業)에도 공헌했으며, 종사랑전위참봉(從仕郞典衛參奉)으로 괴산향교 전교(典校)를 지냈다. 그의 덕행과 인망은 유림인들의 추앙을 받았다. 1960년 6월 12일 화곡국민학교(禾谷國民學校) 동창생 일동과 지방 유지들이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송덕비(頌德碑)가 학교 앞에 있다.【참고문헌】 『괴산군지』 «동아일보» 1940. 3. 20.

 

또한 무의무탁한 주민을 돌보아주며 죽은뒤에는 그들을 위하여 묘지까지 희사하기도 하였다.사회사업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놀이터 부락민들의 공동쉼터등 본부락뿐 아니라 인근부락의 진입로 부락안길의 농로등을 위하여 토지를 희사하였다,신촌마을및 인근마을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열정과 금전을 희사한 선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비석을 마을 초입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