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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물관 야외문인석(淸州博物館 野外文人石) 본문

박물관 구경하기/청주박물관(淸州博物館)

청주박물관 야외문인석(淸州博物館 野外文人石)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2. 21. 09:35



어디서 누구의 무덤을 지키다 이 곳에 왔을까?

햇볕 따스한 청주박물관 한쪽 그래도 둘이라서 외롭지는 않겠다.



능 주위에 위치하는 수호물들은 능을 지키는 것이 본연적인 임무이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능 위에 있는 모든 석수와 문, 무인석이 수호물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 문인석과 무인석은 왕이 살아있을 때처럼 왕을 보호하고 왕에게 경배하는 형태를 띄고 있는데, 이는 생전의 영화를 보여주고 왕의 권위를 살려주는 장식적인 의미가 강하다. 문관을 상징하는 문인석은 머리에 복건을 쓰고 손에는 홀을 들고 있다. 그리고 무인석은 무인을 표현한 조각답게 갑옷을 입고 있으며 칼을 차거나 쥐고 있다. 팔 아래로 관복 소맷자락을 휘 늘어뜨린 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은 벅수와는 달리 공들여 조각한 흔적이 역력해 무덤 앞에서 주인의 지위를 대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수호물 들이 처음으로 묘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진나라 때부터 였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수호물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들은 한 대의 수호물 들이다. 그리고, 이런 수호물들은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변천을 겪게 된다. 석수 중 가장 많이 세워졌던 것이 바로 양석, 호석, 마석 등이었다. 중국의 능묘제도는 당대에 이르러서 완비를 보았고, 황제의 능과 신하의 능은 엄격한 차이를 두었다. 그리고, 석수들은 능 아래에 있는 신도의 좌, 우측에 배치가 되었는데, 복을 구하고 악귀를 막기 위한 것으로서 동물과 영수의 상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 능 주변에 수호물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통일신라시대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왕릉을 보면(예:흥덕왕릉, 성덕왕릉) 봉토의 아래에 12지석 외에 사자석, 문인석, 무인석, 혼유석, 망주석, 비석 등이 완비가 되었는데, 이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이어가면서 큰 틀의 변화 없이 유지가 되어 갔다. 이 시대의 석수로는 사자석이 있었는데, 보통 왕릉의 네 모퉁이에 1개씩 배치되었다.

고려시대의 수호물은 큰 변화 없이 통일신라시대의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석수가 양석, 호석으로 바뀌어 조선시대 왕릉의 기본 석수 형태가 고려시대 때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고려시대의 석수는 사자석이나 호석 한 종류만 있었는데, 고려말에 이르러서는 호석, 양석 두 종류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자석이나 호석 또는 양석의 구별과 나타난 정확한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시대의 석수에서는 사자석이 사라지고 호석이 나온 것을 실록을 통해서 알 수가 있지만, 고려시대의 것에 대해서는 사자석인지 호석인지 양석인지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각 석수의 출현연대를 밝히는 것은 석수가 파괴되거나 오래되어 마모된 관계로 확실히 말할 수가 없다. 고려시대의 석수를 이야기 할 때에는 아마도 이 동물일 것이다 라는 가정 하에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인석 (e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