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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박물관 유학사지삼층석탑(忠州博物館 遊鶴寺址三層石塔)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충주박물관 유학사지삼층석탑(忠州博物館 遊鶴寺址三層石塔)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4. 13. 23:33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는 오래전부터 유학사지(遊鶴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지에는 한가운데 석탑이 붕괴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 석탑이 유학사지 삼층석탑이다. 또한 절 터에서는 불두(佛頭)가 절단된 석불좌상 1구를 비롯하여 다량의 자기편과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들이었다. 이들 유적과 유물로 미루어 유학사는 고려시대 창건되어 법등을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은 기단부를 비롯하여 파손이나 결실된 부재들이 많기는 하지만, 고려시대 성행한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대소원면 부연마을에 있는 현재의 유학사의 모습입니다]


유학사지 삼층석탑은 유학사지로 전해지는 사지 한가운데 붕괴된 채로 남아있었다. 석탑이 있었던 사찰은 사지 일대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양상으로 보아 고려시대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을 중심으로 많은 사찰이 창건되면서 석탑이 건립되었다. 석탑은 사찰의 창건과 동시에 건립되어 중요한 신앙과 예배 활동의 중심 대상이었다. 이 석탑도 예배 활동뿐만 아니라 사찰로서의 상징성을 보이기 위하여 사찰의 중심 공간에 건립되었을 것이다.


충주박물관 본관 왼편 잔디밭에 세워져 있다.

유학사지 삼층석탑은 기단부가 심하게 훼손되고 많은 부재들이 결실되어 원래의 모습을 알기는 어렵지만, 전형적인 2층 기단으로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탑신부는 3층으로 구성되었는데, 탑신석과 지붕돌[옥개석]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우수한 장인에 의하여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단부는 하층기단의 면석부와 하대갑석, 상대갑석 등이 남아 있다.

하층기단 면석부에는 전형적인 우주와 탱주를 세워 각 면을 2부분으로 구획하였으며, 상대갑석은 상면에 2단의 상층기단 괴임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수법은 통일신라시대 이래 전형 양식의 석탑에서 볼 수 있는 수법이다. 상대갑석은 평박하게 치석하여 상면에 2단의 1층 탑신석 괴임을 마련하였다. 하대갑석과 상대갑석에 마련된 괴임단의 치석 수법은 같은 높이로 하여, 고려시대 석탑임에도 불구하고 형식화의 경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

탑신부는 각층 공히 탑신석과 지붕돌을 별석(別石)으로 하여 결구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석탑의 규모가 소형화되면서 탑신석과 지붕돌을 동일석으로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석탑은 별석으로 하여 통일신라시대 석탑 결구 수법을 계승하였다. 탑신석은 좌우에 우주를 세장하게 모각하여 다소 형식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은 하부에 4단으로 지붕 받침을 마련하였으며, 처마부는 수평으로 치석하였다.

합각부는 살짝 들어 올려 약하게 반전을 보이고 있으며,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도록 했다. 지붕돌은 정연한 치석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처마부와 낙수면의 간략화된 측면은 건립 시기가 하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한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탑신석과 지붕돌의 간략화 경향과 다소 형식화된 치석 수법은 이 석탑이 고려 전기경에 건립되었음을 시사한다.


장성리 유학사지 삼층석탑은 기단부 부재가 많이 결실되고 파손된 상태이다. 또한 상륜부도 받침대 외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부재들로 보아 처음 건립시에는 상당히 준수한 외관을 갖춘 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을 중심으로 많은 사찰들이 창건 내지는 중건되면서 다량의 석탑이 건립되었다. 고려 전기에는 대형의 석탑이 많이 건립되었고, 서서히 지방을 중심으로 석탑의 규모가 소형화되면서 작은 규모의 석탑이 건립되는 경향을 보였다. 장성리 유학사지 삼층석탑도 고려시대 지방을 중심으로 성행한 소형화된 석탑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기단부가 심하게 훼손되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2층 기단으로 우수한 장인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고려시대 일반형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