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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읍사곡리 말세를 알리는우믈(曾坪邑射谷里 말세를 알리는우믈)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증평읍사곡리 말세를 알리는우믈(曾坪邑射谷里 말세를 알리는우믈)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8. 10. 08:00

 

 

 

 

 

 

 

 

 

 

 

 

 

 

 

 

 

ㆍ사곡리우물(射谷里-) : 사곡2리 ‘사청’에는 우물이 있다. 원래 이곳에는 우물이 없었다. 그래서 옆 ‘질벌’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가뭄이 들라치면 물로 인한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가뭄이 심한 때에 한 노승이 이곳으로 시주를 왔다.

가뭄으로 인해 인심이 흉흉한 상황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노승에게 정성껏 시주를 했다.

노승은 ‘가뭄이 심한데도, 또 부촌 같지 않은데도 어찌 이리도 인심이 후할까?’하며 의아해했다.

그러던 중 노승이 목이 말라 한 집에 들러 물 한 모금 마실 것을 부탁했다.

그 집의 안주인은 노승의 부탁에 미안해하며, “마침 집에 길어놓은 물이 없으니 여기 마루에 앉아 계시면 물을 길어다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한 후 동이를 머리에 이고 성급히 나갔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안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웃 마을에서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실정을 몰랐던 노승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에야, 안주인은 “죄송합니다. 우물이 워낙 멀어서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며 쟁반에 물을 공손히 받치며 양해를 구했다.

노승은 이제 마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노승은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마을의 물길을 찾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안주인과 더불어 마을 곳곳을 지팡이로 두드리며 한참을 헤매다가 “이곳의 바위를 치우고 우물을 파면 좋은 물이 나올 것입니다.”며 수원(水源)을 점지했다. 그러면서 노승은 “이곳의 우물을 파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을 것이고, 장마에도 넘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물이 세 번 넘쳐흐르게 되면 말세(末世)가 도래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하며 예언과 금기를 동시에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튿날, 안주인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노승이 점지한 장소를 파보았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맛좋은 물이 펑펑 솟았다.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물로 인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우물의 물이 넘쳐흐른다.”며 수군댔다. 안주인은 노승의 예언과 금기가 불현듯 생각났다. 분명 난리가 날 것이지만 금기가 있던 터라, 섣불리 마을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

안주인은 한참을 고민 하다가, 결국 모든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실제로 난리가 났고, 난리 전에 마을 사람 모두가 피난을 갔다.

그래서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무사히 난리를 극복할 수 있었다. 1910년에 일제가 합병을 했을 때도,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우물물이 넘쳐흘렀다고 한다. 2008년 8월 1일에 충청북도기념물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속칭 ‘말세우물(末世-)’로 통한다.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과 칠월칠석에 우물을 푸고, 제를 지낸다. 깨끗이 보호하되, 지붕을 해 씌우지 않았다.

이는 하늘과 통해야만 남자들이 죽는 일이 없다는 믿음 때문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