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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읍비중리석조여래삼존상(內秀邑飛中里石造如來三尊像) 본문

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내수읍비중리석조여래삼존상(內秀邑飛中里石造如來三尊像)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5. 23. 21:10



보물 제1941호. 삼국시대의 불상 예로는 처음 조사된 석조삼존불좌상()이다. 심하게 파손되었지만 청주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 삼존불상은 본존불과 협시보살, 단순한 두광() 그리고 화불()을 좌우로 배치하였다. 그리고 상현좌() 아래에 삼존불과 사자()를 배치한 구도를 보여 준다.

본존불은 타원형의 상체, 턱과 양 무릎을 연결하는 정삼각형적인 안정된 형태, 큼직한 손, U자형으로 무릎을 덮으며 좌우로 내려진 천의()가 상현좌를 이루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고졸한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백제 불상인 군수리()납석불좌상이나 부여 정림사지() 출토 납석삼존불상 등에서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 6세기 초반기의 용문 불상()을 대표하는 중국화된 양식과 친연성이 있다.

협시보살상 역시 머리칼, 상체의 장식성, X자형 옷주름 등이 동위()의 금동보살상과 흡사하다. X자형 옷자락 무늬는 6세기 초반기의 특징적인 형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분황사탑의 인왕상이나 비암사비상보살() 등의 예처럼 7세기에도 가끔 나타나지만 6세기의 특징적인 형식임에는 틀림없다. 중첩된 광배 형식에서도 6세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석불입상의 형태는 추상화된 경향이 좀더 짙게 나타난다. 신체의 굴곡은 대체적인 윤곽선밖에 알 수 없는데 석주()를 적당히 다듬어 몸체를 표현하고 얼굴과 손 그리고 옷자락 무늬를 조각하였다. 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손의 처리, 손과 손의 간격, 짧은 상체 등에서는 비사실미()가 짙게 나타나 연가7년명() 불상보다도 더 고졸한 면을 보여 준다. 이것은 석조각의 기술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형식이나 양식상으로 볼 때 6세기 중엽 내지 후반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또한 발견된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6세기 전반기는 고구려가 50여 년간 점령하였으며 후반기는 신라의 영토였기 때문에 국적을 판별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6세기 후반기에 제작된 것이라면 진흥왕의 영토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어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淸州飛中里石造如來三尊像─石造如來立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