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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읍 교성리 현감김성재애민선정비(鎭川邑 校成里 縣監金聖梓愛民善政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진천읍 교성리 현감김성재애민선정비(鎭川邑 校成里 縣監金聖梓愛民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9. 18. 11:50



김성재(金聖梓 1698-1767)는 부친은 상주목사를 지낸 김도협, 조부는 한성부 판관을 지낸 김석달, 생조부는 형조판서를 지낸 정희공 김석연, 증조부는 현종의 국구인 청풍부원군 충익공 김우명이다. 공은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문정공 잠곡 김육의 현손이며 의정부 우의정을 지낸 문충공 식암 김석주의 재종손이다. 또한 공은 병조판서를 지낸 효정공 김성응과 재종간이며 정조의 국구인 청원부원군 정익공 김시묵과 형조판서를 지낸 익헌공 김지묵 그리고 예조참판 김치묵의 재종숙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진사 이경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로 월사 이정구의 아들인 형조참판 현주 이소한의 증손녀이며 이조판서를 지낸 문희공 매간 이익상의 손녀이고 승정원 도승지를 지낸 이광조의 딸이다. 공은 2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현감을 지낸 김수묵, 차남은 배천군수를 지낸 김안묵이며 황인숙은 사위다.

 

  대대로 높은 관직을 지냈던 가문에서 태어난 김성재는 22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이후 학문에 더욱 매진하였으나 문과와는 인연이 없었던 그는 음보로 출사하여 제용감, 사도시, 상서원, 장악원 등에서 참봉과 주부를 지냈다. 진천현감, 옥천현감을 거친 그는 파주목사, 청주목사에 이르렀으며 70세의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감하였고 사후 사복시 정에 추증되었다. 김성재는 여러 고을의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었으며 당대 노론의 거유들인 문경공 미호 김원행, 문원공 역천 송명흠 등과 폭넓게 교류하였을 정도로 뛰어난 학문을 지닌 인물이다.


김성재는 1734년 영조10년 10월3일에 진천현감의 관직을 제수받았다

그후 진천현감을 1736년에 물러났으며 선정비는 그 후에 건립된것으로 추정된다.

비석의 전면에는 현감김공성재애민선정비(縣監金公聖梓愛民善政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상태는 양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