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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바람이 불면 마음속에 못한 말 하나가득 내려놓았다.그리고 흐르는 바람소리 속으로 꺼이꺼이 눈물을 삼키며 울었다.햇볕 마저도 따가운 봄 꽃길.나는 왜 그 속에서 눈물을 보았을까?항상 내 곁에 있을거라 생각 했던 부모님의 모습재롱을 부리던 아이들의 모습한 생전 젊을거라고 생각 했던 생각들이봄의 꽃잎으로 변하여 바닥으로 떨어지고작은 꽃그림자가 내 마음을 덮을 때흐르는 바람에 한 쪽으로 밀려나추억 그림자속에 쌓여 갈 길 몰라하는내 인생의 그림자가 떨어진 화영(花影)과 오버랩 될 때내 마음속으로 꽃잎은 눈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인생(人生)은 화영(花影)인가?

옥산면 호죽리 길가에 위치하고 있는 순천박씨강동종중 추모원입니다.통훈대부를 지낸 박세병의 무덤 등 순천박씨 종중의 무덤을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이월면 산척리에 있는 보재 이상걸 선생의 생가와 사당 그리고 묘지와 함께 근간에 세운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상설의 호는 보재(溥齋)이고, 자는 순오(舜五)이다. 선생은 학자인 이행우(李行雨)의 아들로 태어나 1894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교수, 한성 사범학교 교관 등을 역임하였다. 7개 국어를 구사하였고 이시영, 이규형 등과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무효를 상소하고 자결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북간도 용정을 중심으로 자녀교육과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이 독립국임을 알리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7년 니콜리스크에서 생애를 마칠 때까지 전 생애를 바쳐 조국의 국권회복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

효촌리 고택은 조선시대에 건축된 가옥을 1930년대 개축한 것이며, 충북지역 상류계층에서 나타나는 트인 □자형의 배치구조를 보인다.현재의 가옥의 상태는 사람이 거주하는 안채는 아직도 사용이 가능하나 앞에 자리한 건물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 않으며 관리가 많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수가 없으며 1935년인 일제강점기에 이전의 집을 개축하였다고 합니다.조선시대 전통가옥과는 달리 다락등의 공간이 많이 나타나고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에 끼친 변화상을 보여줍니다.남일면 효촌리 9-1이다. 일제시대에 목재 수급을 위해 주변의 산을 사서 개축했다고 하는 손갑수씨의 가옥은 ‘ㄱ’자로 된 안채와 ‘-’자 로 된 사랑채, 그리고 안채 좌측의 곳간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겹처마 팔작지..

예전 청주진영순교지 자리에 세워진 청주제일교회의 모습입니다. 청주진영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다섯 진영중 하나로 천주교 박해 때 마다 신자들을 체포하여 심문하고 사형 판결을 내리던 관청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 진영에서 천주교 신자인 복자 오반지 바오르가 "만 번 죽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배반할수 없소"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종 최용운 암보르시오,전 야고보,김준기 안드레아드도 1866-1868년 이 곳에서 순교하였다.1892년 한국으로 파송된 미국 북 장로회 소속 민노아선교사는 자신이 태어난 해에 일어난 병인박해의 순교역사를 기억하고자 1905년 남문밖에 있던 청주제일교회를 청주 진영 순교지로 이전하였다. 2017년 천주교 청주교구는 청주제일교회의 협조와 배려로 순교지 기념 표..

호죽리(虎竹里)는 ‘범때’ 또는 ‘호죽’이라 하였다. 지역이 매우 넓어서 ‘열두 범때’라고 하기도 한다. 옛날에 대나무가 많고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범’과 ‘대’를 붙여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골 마을이라 주변 평야 지대에 비하여 높은 편이며, ‘대’는 대[竹]가 아닌 대(臺)로 보아, ‘평탄하면서 주위보다 한 단 높은 지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범대는 ’범이 다니던 주위보다 높은 곳’을 뜻한다.호죽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상모단 못미쳐 동래정씨문중의 묘소들이 자리한 묘역이 있습니다.묘역 뒷쪽으로 상모단과 함께 조선조의 문신인 정이한의 단비와 정이한의 고조인 정이지의 단비가 자리하고 있는 단비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이한(鄭而漢, ?∼1453)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