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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 탑비 ((瑞山市 雲山面 龍賢里 普願寺址塔碑) 본문

전국방방곡곡/서산(瑞山)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 탑비 ((瑞山市 雲山面 龍賢里 普願寺址塔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12. 31. 08:18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에 있는 법인국사 탄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탄문[900~975]은 자는 대오(), 속성은 고씨(), 광주() 고봉() 사람이다. 15세 때 장의산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고려 태조의 왕사로 있으면서 신명순성왕태후가 임신하였을 때 축수하여 광종이 태어났다. 968년(광종 19)에 왕사로 책봉되고 975년에 국사로 봉해짐으로써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호불 군주이며 개혁 군주였던 광종의 종교적·사상적 배후 역할을 담당하였다.

탄문은 서산 보원사의 중창에 기여하였으며 화엄종의 입장에서 선종 사상을 융합하려고 힘썼다. 서산 보원사가 화엄 10찰의 하나로 꼽힌 것은 탄문의 영향력과 관계가 깊은데, 이에 관련하여 975년 탄문이 보원사에 돌아올 때 교종과 선종 승려 1,000여 명이 그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탄문은 보원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이에 보원사에 탄문의 승탑[부도]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이 조성되고 그 옆에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가 건립되었다. 비석의 건립 연대는 법인국사의 입적 3년 뒤인 978년(경종 3)이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 금당의 바로 뒤편 약간 높은 곳에 남향으로 세워져 사역 전체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승탑과 승탑비의 조성 위치는 보원사에서 법인국사 탄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잘 말해주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는 전체적으로 대형의 대석() 위에 거북 모양의 비좌를 놓고 이수를 갖춘 비신을 세운 형태이다. 국사의 비인 만큼 통일 신라 시대의 발달된 조각 예술이 반영되어 귀부와 이수 모두 예술적 섬세함을 보여 준다. 비신에는 폭 2.3㎝의 세로 행간을 치고 글씨를 새겨 넣었는데, 비문은 한림학사 김정언()이 짓고, 사천대박사 한윤()이 구양순()의 해서체로 비문을 쓴 뒤 김승렴()이 글씨를 새겼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의 비문 내용은 법인국사 탄문의 출가 과정, 태조와 광종 등 역대 고려 임금들과의 특별한 인연, 보원사와의 관계 등을 기록하고 마지막에 국사를 칭송하는 비명()을 덧붙였다.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 내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963년 보물 제106호로 지정되었으며, 비면의 왼쪽 하단에 약간 탈락된 부분이 있지만 보존 상태는 전체적으로 양호하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는 보원사의 불교적 성격, 위치, 중창 시기 등을 밝혀 주는 자료이다. 이것은 경내에 남겨진 부도, 석탑, 당간 지주 등의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