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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면 금산리 김영복효자문(郡西面 金山里 金永復孝子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군서면 금산리 김영복효자문(郡西面 金山里 金永復孝子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1. 17. 14:52

 

1345년 군서면 금산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25세되던 해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는데 온갖 약을 다지어드려도 효험을 보지 못했다. 잉어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한겨울인데도 오십리길을 걸어현 이원면 원동리앞 적등강에 가서 잉어를 잡아다 고아 드리니 병이 나았다.조선태종때 평안도 희천군수를 지내다가 연세 높으신 부모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관직을 사임하고 공양에 온 정성을 다해 드리니 천수를 다하고 마버지께서 돌아가시자 묘 역에 여막을 짓고 죽으로 끼니를 연명하며 3년간 묘를 보살폈다.1405년 자기집에 불이나서 아버지궤연(장사지낸뒤 신주를 모신곳)도 같이타자 아버지를 두번죽게한 불효 막심한 놈이 무슨 낯으로 세상을 살수 있겠느냐 하며 불길속으로 뛰어들어 타 죽었다 이 일이 새상에 알려져 효자로 정려하여 목와조다포집 세평의 정문을 세우고 이 마을을 효자동이라 부르고 김영복의 고손자 김건 효자문과 함께 함창김씨문중에서 관리하고있다.효자문 옆에는 병든 어머니가 있는 여막이 불에 타자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함께 타죽은 김건 효자의 몸종 옥금 효녀문은 우리고장 유일한 노비 효녀문이다

 

금천리 양짓말에는 큰 절이 있던 흔적이 있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고암 정립 선생이 금천사(金川寺)에서 공부를 했다는 일기를 쓴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직전까지는 절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을에는 물을 받았던 큰 석조와 부도가 있어 부도날이라고 불렀던 지형이 있고, 영동 영국사에서 텃세를 받다가, 20여년 전에 주민들에게 터를 매각했다고 전한다.


서대산과 장령산을 휘돌아 수려한 자연을 빚어낸 금천계곡은 옥천군내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히며 여름철 대표적인 행락지다. 조헌 선생이 우리 고장 아홉 곳의 절경을 시로 풀어 ‘율원구곡가(栗園九曲歌)’를 지었는데, 그 곳 중 하나가 금천계곡과 장현봉(장령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