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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척면 영덕리 마애불(山尺面 永德里 磨崖佛)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산척면 영덕리 마애불(山尺面 永德里 磨崖佛)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5. 15. 19:36

 

산척면 용암마을에 있는 성암사위쪽 밤나무농장 끝에 자리하고 있는 마애불입니다.

 

마애불의 하단에는 일제강점기시절 징용을 나갔던 동네 청년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과 함께 이름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곳을 관장했던 면장의 이름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의 커다란 암석을 깍아 보관도 흉내내고 하였습니다.마애불의 모습은 약간 치졸하며 정교한 맛은 떨어집니다.근세기의 충주지방에 조성된 마애불로 당시의 민간신앙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코와 귀에는 약간의 인위적인 파손이 있습니다.

 

성암사에서 관리를 하는지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연등을 달기 위해서 설치한 철재구조물이 조금 거스릅니다

 

영덕리 마애불은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당한 동네 청년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영덕리 사람들이 조성한 것으로 여겨진다.영덕리 마애불은 중앙에서 수직으로 갈라진 높이 2.5m의 석벽 우측에 양각되어 있다. 두정에는 반원형의 큼직한 관을 쓰고 있으며, 두 눈은 툭 불거져 나왔으며, 입은 작은 데 비해 코는 큼직하고 이마에는 백호의 흔적이 있다. 두 귀는 짧으며 얼굴에 비해 크게 위축된 어깨가 있으나 그 이하의 인체 표현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두 손의 표현도 기이한 형태로 가슴 앞에서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수평하게 펴서 오른손이 위, 왼손이 아래로 가도록 양손이 수평 교차되어 있다. 방형의 대좌 전면에는 1행 5자씩의 명문 8열이 있다. 명문의 내용은 조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원병, 징용 등으로 끌려간 동네 청년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내용이다.조각수법은 치졸하나 조선시대 이후 불상의 조성이 적고 일제강점기에는 더욱 줄어든 바, 기복신앙과 관련하여 근·현대 불교조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